정부가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뿌리 뽑기 위해 증거 개시 제도 도입, 손해배상 강화, 행정조사 권한 확대 등 전방위 대책을 내놨다. 피해기업의 불리한 소송 환경을 개선하고 충분한 보상을 보장해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0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공정거래위원회, 특허청, 경찰청 등과 합동으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은 지난 8월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토론과 민·관 간담회를 거쳐 마련됐다.
그간 중소기업들은 “기술탈취 피해 입증이 어렵고, 소송에서 이겨도 손해배상액이 턱없이 낮다”고 호소해 왔다.
최근 특허청·벤처기업협회가 벤처기업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기술침해 소송 과정의 애로사항 중 증거수집 곤란이 73%를 차지했으며, 판결문 분석 결과,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인용한 금액은 평균 1.4억원으로 피해기업이 청구한 평균 금액 8억원의 17.5% 수준에 불과했다.

정부가 제시한 이번 대책은 △피해 입증 지원 강화 △손해배상 현실화 △기술탈취 예방 강화 △추진체계 효율화 등 4대 과제로 요약된다.
먼저 '한국형 증거 개시 제도'를 도입해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현장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자료보전명령, 자료제출 명령권 신설 등으로 기업의 증거 확보를 지원한다. 행정조사 권한도 강화해 익명 제보·직권 조사·과징금 부과가 가능해진다.
손해배상 체계는 기술 개발비용을 손해로 인정하고, 법원이 전문기관에 손해액 산정을 의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기술보증기금 산하에 '중소기업 기술손해 산정센터'를 확대 운영하고, 기술보호 플랫폼에 판례·개발비용 등 데이터를 통합 제공한다.
예방 차원에서는 기술임치 건수를 2030년까지 3만건으로 확대하고, 영업비밀 원본증명 서비스를 아이디어까지 확대한다. 보안설비 지원, 구독형 디지털 포렌식 등 맞춤형 보호제도도 신설된다.
추진체계는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과 '중소기업 기술분쟁 신문고'를 신설해 피해기업의 신고·구제를 일원화한다. 경찰청과 특허청의 수사 공조를 강화하고, 비대면 원격조정 확대, 소액사건 직권조정 등 분쟁조정 효율화 방안도 포함됐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정과 신뢰에 기반한 공정성장 경제환경의 실현”이라며 “대책이 실효성 있게 현장에 안착하도록 부처 간 협업을 통해 세밀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벤처·중소기업계는 이날 일제히 환영의 입장을 내며 제도의 조속한 안착을 주문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오랜 기간 벤처기업이 호소해온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고, 혁신의 결실인 기술이 정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울타리가 마련됐다”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협회는 특히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와 자료제출 명령권 신설이 피해기업의 가장 큰 애로였던 '입증 곤란'을 해소할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환영 논평을 내고 “대기업에 편재된 증거확보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회는 다만 전문가 조사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현재 발의 중인 불공정거래 피해구제 기금 신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기술탈취 과징금을 20억원으로 상향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조속한 법령 개정과 하위 규정 정비로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노비즈협회는 정부의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에 의미 있는 변화”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AI 기반 자료 검토 시스템 도입 등으로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며, 이노비즈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책 참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