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거대 인공지능(AI) 모델이 산업과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한다. 안정적 연산 자원 확보는 대한민국 'AI 3대 강국 전략'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국가 AI컴퓨팅센터 조성 사업이 두 차례 유찰돼 지연되고 있지만 조만간 본격화할 것이다. 이 거대한 인프라를 어디에 구축하느냐의 문제는 국가 AI 경쟁력 차원에서 심사숙고할 과제다.
해외 사례는 그 답에 실마리를 준다.
실리콘밸리는 슈퍼컴퓨팅 자원과 세계적 대학, 벤처 자본, 스타트업 생태계, 정책 지원이 맞물리며 AI 산업의 심장부가 됐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를 실험장으로 삼아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의료·금융·스마트시티를 결합해 동남아 AI 허브로 자리 잡았다. 중국 상하이는 국가 GPU 인프라와 제조 현장, 강한 지방정부 지원을 결합해 AI 산업과 시장을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AI 거점 도시는 단일 요인이 아니라 인프라, 인재, 산업, 행정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자. 이 네 가지 조건을 가장 충실히 갖춘 곳이 부산이다.
인프라 측면에서 부산은 고리 원전이 위치한 지리적 이점에 빠른 송전망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전력공급 여건을 갖추고 있다. 국제 해저케이블 접속 지점(CLS)이 집중된 글로벌 초저지연 네트워크 보유지역이다. 초거대 AI 모델의 안정적 운용을 위한 핵심 조건이 전력과 네트워크는 단연 독보적이다. 세계 2위 환적 물동량을 자랑하는 부산항은 스마트 항만, 자율운항, 지능형 물류를 테스트하고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실증 무대다.
관련 산업 육성과 인력 양성은 지역 최고 수준이다. 22개 대학에서 매년 1만명 이상의 이공계 인력을 양성하고, 지역 기관은 매년 2000명 이상의 AI·클라우드 전문가를 교육해 배출한다. 지역 조선·제조 현장에서 AI·로봇·디지털트윈 기술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금융·콘텐츠 분야의 AI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부산시 행정 지원과 대응도 발빠르다. 일찍이 서부산에 데이터센터 생태계를 선도적으로 조성했다. 강서구 에코델타시티에 3조6000억원 규모의 그린데이터센터 단지를 조성한다.
민간 기업이 앞다퉈 부산을 데이터 거점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부산의 입지 경쟁력을 잘 보여주는 요소다. 강서구 미음지구 글로벌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단지에는 원아시아, LG CNS,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이 입주했다. 2029년까지 부산에 19개 민간 데이터센터가 운영될 예정이며 예상 전력 수요만 원전 1.4기에 달한다.
하지만 부산은 연구자와 중소기업이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공용 GPU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민간 투자 기반 위에 국가의 전략적 투자가 더해지면 부산은 데이터센터 글로벌 허브이자, 대한민국 AI 산업 전환의 중심도시로 빠르게 도약할 수 있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저렴하고 안정적인 AI 연산 자원을 활용해 혁신을 가속화하고, 해운·항만·물류·금용·제조 등 주력 산업의 세계 경쟁력은 강화될 것이다.
부산은 '버티컬 AI' 실증·확산에도 최적의 도시다. 항만 물류, 조선·제조, 금융, 스마트시티 등 특화된 AI 수요가 존재하고,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센터 인프라와 인재 공급망이 마련돼 있다. AI 전문 인재 유입과 청년 일자리 창출, 글로벌 기업 추가 투자라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
지역 균형발전의 목적은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과 기회를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국가 AI컴퓨팅센터를 부산에 구축하는 것은 국가 균형발전 정책의 구체적 실천이고 국가 AI 반도체·GPU 인프라 구축 목표와도 부합한다.
국가 AI컴퓨팅센터는 대한민국 AI 경쟁력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가장 강하게 뛸 수 있는 곳은 민간의 선택과 준비된 행정으로 이미 검증된 도시 부산이다.
김태열 부산정보산업진흥원장 tykim@bip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