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미·일·인도·유럽연합(EU) 5개국이 모인 바이오·제약 분야 공급망 협의체가 출범 이후 9개월째 휴업 상태다. 협의체 발족을 주도했던 미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관심이 옅어진 데다 우리나라 역시 비상계엄 사태로 참여 동력이 떨어진 게 주원인이다. 이번 협의체가 사실상 미국의 대중 견제 포석인 만큼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필수의약품 공급망 강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3일 정부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5개국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바이오제약 연합' 출범 이후 후속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회의 등 운영 일정도 미정이다.

바이오제약 연합은 2023년 12월 한국과 미국의 제1차 핵심신흥기술 대화에서 향후 팬데믹 발생시 의약품 공급망 안정을 위해 국가간 협력이 필수라는 공감대를 형성, 연합 구성에 합의한 게 모태가 됐다. 지난해 6월 한미 양국은 물론 일본과 인도, EU까지 참여하며 본격적인 출범을 알린 바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바이오 안보 강화를 위한 대통령실 주도하에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기관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주요 기업이 회의에 참여했다.
유명무실해진 가장 큰 이유는 협의체 창설을 주도했던 미국의 관심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미국은 바이오·제약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생물보안법' 제정과 함께 협의체까지 만들었다. 생물보안법을 통해 자국 내 중국 바이오기업 사업을 제한한 뒤 한국과 일본, 인도, EU까지 견제 움직임에 동참시키는 게 목적이다. 특히 중국이 공급하던 필수의약품의 공백을 협의체를 통해 공동 해소하는 효과까지 노렸다.
하지만 생물보안법이 지난해 상원 표결에서 통과되지 못하며 동력이 떨어졌다.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정책에 총력을 기울인 데다 바이오·제약 분야 역시 약가 인하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 밀렸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대통령실이 역할을 하기 어려워지면서 복지부 등 관련 부처도 관망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기관 관계자는 “발족 이후 각국의 필수의약품 수요 조사를 실시하긴 했지만 상호 교환과 이에 따른 협업방안 마련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면서 “미국 내 정권 교체로 바이오제약 연합에 대한 관심이 줄었고, 우리나라도 대통령실이 비상계엄 사태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현재까지 후속 논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필수의약품 공급망 이슈는 꾸준히 제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독자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중 갈등에 엮여 수동적인 움직임보다는 실리외교를 통한 필수의약품 확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지정학적 이슈 등으로 필수의약품 공급망 불안은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면서 “물밑에서 공급망 강화를 위한 실리 외교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