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 AI칩 설계 기술력 인정은 반갑지만…

연초부터 인공지능(AI) 칩 분야 대형 인수합병(M&A) 건이 한국에 날아들었다.

매수의향자는 AI 초기 주도권을 오픈AI에 놓치고 절치부심하고 있는 미국 빅테크 선도그룹 메타이고, 매각 기업은 한국에서 창업한 AI칩 스타트업계의 기린아 퓨리오사AI다. 벽두부터 요동치고 있는 글로벌 AI업계 판도를 또한번 흔들어 놓을 빅딜로 여겨진다.

2017년 출범한 퓨리오사AI는 삼성전자와 AMD를 거친 엔지니어 출신 대표가 이끄는 데이터센터용 AI 추론·연산에 특화된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다. 2021년 내놓은 첫 AI반도체 '워보이'로는 그닥 눈에 띄지 못했지만, 2세대 제품인 '레니게이드'를 지난해 8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공개하면서 글로벌 AI 파도에 올라탔다. 한국에서 첫 AI칩 분야 글로벌 유니콘 탄생 기대감이 쏟아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후 퓨리오사AI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벌이는 수천억달러 규모 투자 전쟁 속에서 독자생존 또는 성장을 위해 악전고투해 왔다는 것이 업계 정설로 통한다. 지금까지 유치한 1700억원 대 초기투자금으로는 지금의 레니게이드 양산을 위한 위탁생산(파운드리)을 맡기기에도 빠듯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갈 길 바쁜 메타로선 독자적인 AI칩 설계를 위해 퓨리오사AI 인수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오픈AI는 '스타게이트' 규합과 함께 독자적 AI칩 생산을 공식화했으며, 아마존, 구글 또한 내외부 역량 확보를 통해 독자 AI칩 개발과 양산에 사활을 걸고 매달리고 있다. 앞으로 각 진영 AI칩 설계 고도화와 양산에 따른 성능 확인이 빅테크들의 AI전쟁 2차전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글로벌 AI 격랑 속 한국의 AI 반도체 설계기술이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았다는 점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퓨리오사AI를 비롯해 리벨리온·딥엑스·모빌린트 등 토종 AI반도체 스타트업들의 성장 레이스에도 좋은 본보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스타트업도 피어난다.

동시에 아쉬움도 남는다. 한국 AI 생태계가 무조건 각자도생에만 매달리며, 정부나 대기업 조차 이런 유망 스타트업의 성장노력을 품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거 중요 산업 변곡점 마다 우리에게 있었던 천재일우의 역량 강화 기회를 우리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흘려버린 것 아닌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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