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명을 태운 아제르바이잔 여객기가 카자흐스탄 해안에 추락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러시아 방공망이 이를 우크라이나 드론으로 오인해 격추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25일(현지 시각) 아제르바이잔 항공 여객기(J2 8243편)가 카자흐스탄 악타우시 인근에 추락해 탑승자 중 38명이 사망했다. 탑승자 29명은 목숨을 건졌으나 11명이 중태에 빠져 사망자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로이터 통신은 26일 미 당국자를 인용해 “초기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의 방공망이 아제르바이잔 항공기를 공격했다는 징후들이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사고기의 당초 예정된 도착지는 러시아 체첸공화국 그로즈니다. 사고와 관련해 러시아 관제 당국은 새떼와의 충돌, 즉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기 동체에 마치 총알에 뚫린 듯한 구멍이 확인되면서 '러시아 방공망'에 격추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추락 지점이 도착지와는 동떨어졌다는 점과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그로즈니 공항을 폐쇄한 적 있다는 점이 의혹을 키웠다.
당일 러시아 국방부가 여객기가 우회한 지점 근방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59대를 격추했다고 밝힌 점이 근거가 됐다. 또한 사고 발생 불과 3시간 전에도 러시아 국방부는 그로즈니 서쪽 블라디캅카스 상공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1대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러시아 방공망이 그로즈니 인근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예비 조사 결과 자국 여객기가 러시아 대공미사일 또는 그 파편에 맞아 격추된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고기는 그로즈니로 향하던 중 항로를 변경하고 카스피해 동쪽으로 건너가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에서 착륙을 시도하다 실패해 그대로 추락했다.
WSJ은 사고 원인 조사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해당 여객기를 자국 영공으로부터 우회시키고 GPS를 교란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군사 활동을 추적하는 비영리 조사단체 '분쟁정보팀'(CIT)의 루슬란 레비예프는 “비행기 동체에 난 구멍은 공대공 미사일에 탑재되는 종류의 발사체와 '판시르-S1'와 같은 방공 시스템에서 발사되는 대공 미사일로 인해 받은 충격과 매우 유사하다”라고 분석했다.
영국의 항공보안회사 오스프리 플라이트솔루션도 당시 추락 영상, 항공기 손상, 최근 군사 활동 등을 통해 여객기가 특정 '대공포'에 격추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는 이 의혹에 반박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현재 추락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며 결론이 나오기 전에 가설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