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재료 제조 뿌리까지 ‘흔들’
다양한 소재R&D 과제 발굴을
국내 반도체 소재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 소재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수 있게 돕는,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경기 침체와 전방 수요 악화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소재 업체인 엘피엔은 최근 화장품 원료업체 세라수에 인수합병(M&A)됐다. 세라수는 엘피엔 자산을 화장품 원료 생산능력 확대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혀, 기존 엘피엔 사업은 사실상 폐업하게 된 셈이다.
2012년 설립된 엘피엔은 SK하이닉스에 최종 공급되는 전자재료 제조를 위한 전구체를 생산했던 업체다. 충북 오창공장에 자체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2021년부터 3년간 연간 적자를 냈고, 올해 초 투자 유치가 여의치 않자 최대주주 지분을 매각했다.
또 다른 반도체 소재 업체인 테크늄도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 회사는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를 규제한 2019년 설립됐다. 크로스 링커(CL), 포토 액티브 컴파운드(PAC) 등 외산에 의존하던 PR용 소재 일부를 국산화하며 성과를 냈으나 침체를 피하지 못했다. 소니드에 인수된 2021년부터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중견 및 대기업도 소재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기초소재인 웨트케미칼 사업과 세정사업을 중국에 매각한 SK엔펄스는 올해 회사 자체가 매물로 나왔다. CMP 사업과 블랭크마스크가 대상이다. CMP는 웨이퍼 상에 형성된 박막을 화학적, 기계적으로 연마하는 것이며, 블랭크 마스크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 들어가는 포토마스크의 핵심 소재다.
한국 소재는 중국이 흡수하는 모습이다. 엔펄스 사례에 앞서 인쇄회로기판(PCB) 업체인 대덕그룹 계열사였던 위매스는 2021년 중국 자본에 매각됐다. 위매스는 1999년 설립된 업체로 PR(ArF·KrF)에 필요한 소재를 생산해왔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인공지능(AI) 영향으로 활기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HBM을 제외한 범용 메모리(PC·스마트폰용 D램과 낸드)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등은 부진을 겪고 있다.
이런 반도체 산업 침체는 국내 소재 생태계에 직격탄이 되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소재업체들은 매출 의존도가 특정 업체에 높게 형성되기 때문에 반도체 제조사가 전자재료 구매를 줄이면 최하단의 영세한 소재 업체 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소재 산업 부진이 올해로 끝이 아니라는 데 있다. 범용 반도체에 대한 수요 반등은 아직 요원하고, 오히려 미·중 갈등 한 가운데 한국이 껴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은 대중국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HBM 수출을 막아서고 나섰다.
반도체 전자재료는 수지·용매·감광제와 첨가제 등의 소재를 혼합해 만들어진다. 전자재료사는 2~3차 협력사를 통해 소재를 공급받는 구조다. 공급망 안정화에 중요한 축이지만 이대로라면 큰 결손이 생길 것이란 지적이다. 일본의 경우 전자재료-소재 업체 간 유대관계에 기반한 자체 생태계를 구축했지만, 한국은 아직 생태계가 견고하지 않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정부가 전자재료, 소재 연구개발(R&D)에 대한 다양한 과제를 발굴해 생태계가 체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