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끝나고, 또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마무리된다.”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사 중 한 구절이다. 헤겔의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가진 사건과 인물들이 되풀이 된다”는 통찰에 대해, 마르크스가 처음의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다음번 유사 사건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현됨을 경고했다.
1980년대 한국의 소극장 운동을 이끈 '극단76'의 '관객모독' 공연에 '관객으로 참여'했었다. 피터 한트케의 실험극인 '관객모독'에는 특정한 줄거리가 없다. 무대 위 네 명의 배우들은 일방적인 언어유희로 독설을 쏟아붓고 관객들을 충실하게 '모독'했다. 관객에게 물을 끼얹고 분무기로 살충제 살포하듯 뿌려댔다. 욕설과 물세례에도 공연은 참신했다. '봉숭아 학당'의 '맹구'로 열연했던 배우 이창훈도 '관객모독' 초연 배우 였다. 피터 한트케는 201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예수님이 20세기에 부활하신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진중한 질문에 '관객모독' 배우들은 '모독'을 펼친다. “그땐 부활의 모든 장면과 설교들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겠지. 모두들 다음 뉴스를 기다리고.”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정말 그렇겠네. 그럼 신성한 부활과 복음 전파의 신비도 예전같진 않겠군.” 매스미디어의 시대였다. 당시에는 중앙집중화된 언론사를 장악해 중계방송도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4년 모든 이들이 손에 치켜든 스마트폰과 유튜브 앞에서는 '중무장 계엄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함께 셀카를 찍으며 '하~트'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들뿐. 분산된 미디어는 집중보다 강건했다.
1970년대 화성 탐사는 1990년대 소저너와 2000년대 오디세이로 이어진다. 한편 그 먼 화성까지 날아가서 겨우 한 대의 착륙선만 내려보내는 시도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가장 큰 도전이 착륙이기 때문이다. 수십 대의 착륙선을 실어 보내고 수차례 시도하면 그 중 몇은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존귀한' NASA가 확률에 의존해서 수십 대의 착륙선을 보내는 모양새 빠지는 일을 할 수는 없다. 참담한 실패 장면들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NASA 예산은 삭감될 것이다. '존귀'와 '분산'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 번에 소형위성을 수백개씩 쏘아 올리는 '저급'한 일은 스페이스X나 아스트라 같은 민간에 용역을 주는 것이 안전하다.
스페이스X는 한 번에 143기의 소형위성을 쏘았다 한다. 몇 대쯤은 분실됐을 테다. 현재 약 2만4000개의 소형위성이 떠있다. 머지않아 우리 모두는 '개인 위성 계정'을 가질 운명이다. 소형위성 군집운영은 가공할 능력을 갖는다. 일론 머스크는 F35 전투기 개발이 “너무 비싸고, 너무 많은 기능을 넣어서 이것저것은 좀 하지만, 똘똘한 능력은 하나 없다”며 예산삭감을 예고했다. 소수의 최강 전투기보다 대량의 작고 다양한 무인드론 체계를 더 선호했다. 결집된 분산은 집중보다 강건하다.
최근 FSD v13.2 발표 후 테슬라 주가는 급등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은 인간을 앞설까? 평균적인 사람과의 비교라면 '그렇다'. 하지만 AI도 최고의 인간 운전자를 앞설 수 없다. 특히 비포장 사막이나 정글에서의 예측불가 경주라면 말이다. 기계는 인간조차 겪어보지 못한 무한한 예외적 가능성을 다 학습할 수 없고 임기응변적 대응에 취약하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군집운행' 능력에서는 기계 네트워크가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서로 교신하는 위성, 드론, 자율주행차의 '군집운행' 능력은 사람을 크게 앞선다. 사람에겐 결핍된 능력이다. 작고 단순한 힘들이 정렬될 때, 분산은 집중보다 특히 강건하다. FSD가 정부규제를 뚫고 다수 운행자가 되고 나면 교신 중인 FSD 망에서 인간 운전자는 쉽게 소외될 것이다. FSD가 교신체계 표준을 장악하고 나면 한국 고유기술 참여는 매우 어려워진다. 군집된 힘들이 정렬된 분산 생태계는 대체불가능으로 치닫는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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