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전기차, 안전이라는 동력으로 혁신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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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국 국토교통부 2차관

전기차는 내연차보다 우리 일상에 먼저 등장한 교통수단이다. 1886년 최초의 가솔린차가 등장하기 54년 전인 1832년 이미 최초의 전기차가 개발됐다. 19세기 후반 전기차는 조용하고 진동이 적다는 장점 때문에 내연차보다 오히려 큰 인기를 끌었으며 한때는 부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연기관의 대량생산체제 도입 등으로 전기차는 내연차와 경쟁에서 뒤처지며 대중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이 시대적 과제로 자리 잡으면서 전기차가 다시 미래 모빌리티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한 해 전기차는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18%를 차지했으며 한국에서도 신차 구매자의 10명 중 1명 정도가 전기차를 구매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35년까지 전 세계 전기차 보급이 12배 증가하여, 판매되는 자동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전기차 보급의 확대는 환경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지난 8월 인천의 한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는 전기차의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유발했다.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출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려는 주민들과 전기차 차주들 간의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현재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슬기로운 대처를 통해 전기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지난 9월 관계 부처 합동으로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대책'을 발표했다. 전기차의 제작부터 운행까지 전 주기에 걸쳐 전기차의 안전성을 강화해 화재 발생 가능성을 낮추고 전기차 화재 발생 시 신속한 대응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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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안전성 인증제도 절차

이에 따라 내년 2월부터는 정부가 직접 모든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을 사전에 인증하여 제작 단계부터 안전한 배터리가 장착되어 판매되도록 할 계획이다. 기존의 자동차 안전관리 체계는 자동차의 안전기준에 적합한지를 제작사가 스스로 인증하는 방식인데 이를 전면 전환하는 것이다. 지난 10월부터는 관련 시범사업도 추진 중이다. 아울러 개별 배터리에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해 제작부터 폐기까지 배터리의 전주기 이력 관리도 추진한다.

내년 3월부터는 자동차 정기 검사 시 배터리 안전성 검사항목을 대폭 강화하여 운행 중인 전기차의 안전관리도 강화한다. 자동차 제작사도 매년 전기차 무상 안전점검을 실시해 주기적으로 안전성을 점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배터리 이상 정보를 미리 감지하여 대응할 수 있도록 배터리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 관리시스템(BMS; Battery Management System) 기능도 고도화한다.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기차가 주차되어 있을 때도 배터리 이상 정보를 감지해 차주와 제작사에 통지하는 BMS 안전기능을 장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기능의 장착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BMS 안전기능을 추가로 개발하여 장착하는 제작사에 과징금을 감경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지난달에는 BMS가 감지하는 배터리 이상 정보의 위험도 표준을 마련했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위험도 표준에 따라 심각한 위험 발생 시 자동으로 소방서로 차량 정보를 전송하고 소방서가 즉시 출동해 조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작사, 소방청과 함께 시범사업도 준비 중이다.

이번 달에는 자동차 제작사가 전기차 배터리 주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일명 '배터리 실명제'가 시행된다. 소비자들은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의 정보를 바탕으로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게 되며, 안전한 전기차를 개발하기 위한 제작사들의 경쟁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전기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 이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오히려 탄소중립 시대를 앞당기고, 미래 전기차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할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지속 가능성과 안전성을 모두 충족하는 전기차의 미래는 오늘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있다.

〈필자〉

백원국 국토교통부 2차관은 경남 거창 출생으로 성균관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기술고시 31회 건축직렬에 수석 합격해 국토부에 입부했다. 사무관 시절 기획조정실과 복합도시기획과 등을 거쳤고, 서기관 승진 이후인 2008년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과장급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이어 도시재생과장과 행복주택정책과장 등을 지냈다. 2016년 이사관으로 승진한 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도시재생사업기획단장, 국토정책관 등을 거쳤다. 2022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된 이후 국토교통비서관으로 발탁됐고 지난해 국토교통부 2차관으로 임명됐다. 국가균형발전과 도시재생, 행복주택 등 여러 이해당사자의 입장이 엇갈리는 정책 분야에서 갈등을 관리하고 해법을 도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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