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 장비 설 곳 잃어가는 中 반도체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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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세계 반도체 장비 최대 수요처인 중국 시장에서 미국 등 '외산' 장비가 설 곳을 잃고 있다. 미국 정부의 대중국 수출 규제에 더해 중국의 반도체 장비 자립화 속도가 빨라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장비 업계 활로로 여겨졌던 중국 시장 변화에 따라 국내 장비사들 역시 타격을 입을 것으로 관측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실적을 발표한 미국 반도체 장비사 램리서치, KLA는 중국 매출 비중이 감소하고 있고, 내년에도 이같은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램리서치는 올해 1분기 42%였던 중국 매출 비중이 2분기 39%, 3분기 37%로 낮아졌고 4분기 30%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팀 아처 램리서치 회장은 “올해보다 내년 중국 매출 비중이 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KLA는 올해 연간 중국 매출 비중이 40% 초반대를 추산되나, 내년에는 28~32%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의 중국 매출 감소는 대중국 수출 규제와 중국 현지 장비사들의 공세 탓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첨단 반도체 제조용 장비가 중국에 반입되는 것을 막고 있다. 중국에 판매되는 장비가 대부분 성숙 공정(레거시)용이더라도 일부는 수출 규제 영향권 안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중국 장비사들의 '굴기'다. 중국 반도체 장비는 미국·일본이나 한국 장비보다 기술적으로 뒤처졌다고 평가받았으나 최근에는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구공정용 장비의 경우 사실상 기술 격차가 없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실제 중국 장비사들의 실적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장비사 북방화창(나우라)는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누적 매출이 약 3조9415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39.5% 증가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장비 매출이 급격히 증가했을뿐 아니라 원가율도 하락해 수익성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같은 기간 중웨이반도체(AMEC)는 약 1조665억원, 화하이칭커는 약 4747억원의 매출을 기록, 각각 전년 대비 36.3%, 33.2% 증가했다. 특히 AMEC은 식각 장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3.8% 늘었는데, 미국 램리서치가 주력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중국 장비사의 현지 영향력 확대는 한국 장비 업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반도체 경기 침체로 국내 투자 열기가 식었을 때, 중국이 국내 장비사들의 활로였다. SEMI(옛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4년(2020~2023년) 간 반도체 공정 장비를 가장 많이 구매한 나라다.

국내 장비사 관계자는 “유사한 기능의 장비가 한국 대비 중국이 30~40% 저렴한 경우도 있다”며 “가격 경쟁력에 더해 기술력도 많이 올라 국내 장비사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게 장비사 최대 과제”라며 “다만 중국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갖고 있기에 국내 기업들은 기술 고도화를 통해 미국, 대만,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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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국 반도체 장비사 3분기 실적 발표 주요 내용 - 미국·중국 반도체 장비사 3분기 실적 발표 주요 내용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