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규제와 관련해 이전과는 차별화된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학계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플랫폼 생태계에 적합한 규제 특성을 '유연성'으로 제시했다.
26일 플랫폼법정책학회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한 추계학술대회에서는 플랫폼의 특성과 규제 쟁점 및 대안에 대한 학계 전문가들의 깊이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주제는 '플랫폼의 특성과 플랫폼 규제의 새로운 동향'이다.
이봉의 플랫폼법정책학회장(서울대 교수)은 “디지털경제 하에서 플랫폼 중요성이 지대함에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플랫폼 산업을 규율하는 법이 없다”며 “국가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해나갈 예정”이라고 학술대회 개최 의도를 설명했다.
발제자로 나선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플랫폼 자체를 하나의 회사나 조직, 단일 시장으로 보고 이를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이 시장과 조직을 합친 메타 조직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플랫폼 간 경쟁과 플랫폼 내 경쟁 모두 중요하다고 밝혔다. 어느 한쪽을 규제하면 다른 쪽의 운영이나 경쟁력에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규제 불평등도 짚었다. 플랫폼법 역외적용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규제당국 관할권 제한 △국제법 및 외교 △플랫폼 인프라 분산 △경제적 파급력 △불확실한 규제 결과 △국경 없는 디지털 특성 △대체 접근 및 우회 △글로벌 플랫폼 영향력 등을 꼽았다.
해결책으로는 △원칙 기반 규정 △적응형 규제 △협력적 참여 등을 제시했다. 경쟁당국 등 규제기관은 규제 알고리즘에 대한 투명성과 비편향성을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 교수는 “경쟁당국은 플랫폼 생태계 내부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무한히 만들 수 있다”며 “그러나 플랫폼은 그 특성상 어디에서든 민감한 이슈가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용석 건대 교수는 디지털 플랫폼 규제에 '자율규제' 등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플랫폼이 다양한 유형을 띠고 있어서다. 각기 다른 정책적, 법적 요구를 가지고 있어 기존의 규제 틀로는 다루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기술 진화 또한 기존 산업 규제와의 차별성이 필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혁신과 유연성 보장 △효율적인 규제 비용 절감 △이해관계자 참여와 규제 정당성 확보 △정부 규제 보완적 역할 및 규제 공백 해소 △법적 분쟁 감소 및 사회적 책임 강화 등을 자율규제의 장점으로 꼽았다.
국가 개입의 수준은 기업의 자율성을 유지하되 법익과 위험 요소에 따라 강도를 설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규제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과잉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규제 논의는 국내 기존 자율규제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네이버 자율규제위원회 △카카오 기술윤리위원회 등이 예시로 꼽혔다.
황 교수는 자율규제에 대한 평가 기준도 마련했다. 크게 3개의 차원 내 20개 기준이 담겨있다. 이같은 평가 모델을 고도화한다면 입법 규제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자율규제를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황 교수는 “지나치게 강한 정부 규제는 산업 성장을 저해하므로 자율 규제를 통한 시장 자율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와 플랫폼의 적정한 규제 관계 설정이 규제의 투명성과 책임성, 이행력을 강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토론에서는 자율규제 시행 전략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황성기 한양대 교수는 5단계 자율규제 모델을 제시했다. 자율성 강도에 따라 △사업자 모델 △산업계 모델 △자율규제 법정화 모델 △법정자율규제기구 모델 △위임적 자율규제 모델로 나눌 수 있으며 자율도가 높은 단계에서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판단했다.
황 교수는 “자율규제가 연착륙하도록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제3의 독립적인 평가기구에 의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