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이공계 육성 투자 늘리는데 인재는 빠져나가…“자부심 높이고 현장 소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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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열린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5차 회의' 현장. (사진=과기정통부)

정부가 첨단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각종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의대 진학, 해외 유학 등 이공계 인재가 빠져나가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장에 있다 보니 이공계 기피 현상을 뼛속까지 체감합니다. 전체 의대 정원만큼 인원이 고스란히 빠져나가고 그다음 학생들이 서울대 공대로 들어옵니다. 과거에 대학원생들은 자기 분야를 스스로 개척했지만 이제 그런 인재는 많지 않습니다.” 최근 만난 서울대 이공계열 한 교수는 지난 몇 년간 이공계 인재 이탈을 체감했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정부 주도의 이공계 인재 양성 정책은 최근 몇 년간 지속되고 있다. 2021년 인재양성 정책 혁신방안 발표를 시작으로 2022년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방안, 2023년 첨단분야 인재양성 전략, 이공분야 인재 지원 방안 등 해마다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한 긴급 처방이 쏟아져 나온다. 그에 따른 이공계열 재정지원 정책도 다양하다.

그러나 정작 이공계 인재는 계속해서 이탈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이공계 학생 해외 유출 인원을 총 33만 9000여명 정도로 추산한다. 해마다 3~4만명의 이공계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공계특성화대학의 중도 탈락 학생도 증가 추세다. 2023년 기준 자퇴와 미복학 등으로 인한 KAIST 중도 탈락 학생은 130명이었다. 2019년 76명, 2020년 145명, 2021년 100명, 2022년 125명으로 5년간 총 576명이 중도 탈락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2년 이공계특성화대학 중도 이탈자는 268명으로 2021년 187명보다 43.3%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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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발간한 과학기술정책 브리프 보고서에서는 이공계 위기의 근본 원인이 대학-대학원-포닥을 거쳐 교수·연구원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선형적 경력개발 경로가 깨지고 경력개발(취업) 확률이 크게 낮아진 것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이준호 전국대학기초과학연구소연합회장은 “R&D 삭감 여파가 너무 컸던 탓에 학문 후속세대의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의 불안감이 가장 크다”면서 “당장 대책이 나온다고 해도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문 생태계라는 근간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는 이공계 학생 이탈 방지를 위한 대안으로 학·석·박사 학위를 조기 취득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내놓기도 했다. 기존의 수업연한을 단축해 학사과정부터 박사까지 걸리는 시간을 5.5년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연구유학생 비자를 완화하는 방안도 내놨다. 외국인 이공계 인재로 이탈한 국내 이공계 인력을 대체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런 대책이 보조적인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회장은 “과거에 비해 한국에서 학위를 따는 학생들은 늘었지만, 해외로 박사후연구원을 나간 뒤 한국에 돌아온다는 학자는 줄어들고 있다”면서 “정부는 인재들이 의대보다 이공계열 학자로서 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구 계층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필호 기초과학 학회협의체 회장은 “지난해 삭감됐던 것에 비해 연구비가 복구되긴 했지만 신진 연구자의 기회가 줄어들었다”며 “젊은 연구자들에게 최소 한 번의 기회를 줘야 사다리를 타고 그다음 단계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회장은 “현장과 계속 소통하면서 현장 친화적인 정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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