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이현순 중앙대 이사장, “이공계 인재가 국가의 미래…사회 인식·처우 바뀌어야”

이현순 중앙대 이사장 “과학기술인 사회에 중요한 인적 자원…후배들 힘들어도 좌절 말길”
한국 최초 자동차 국산 엔진 ‘알파 엔진’ 개발한 국내 자동차 업계 1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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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순 중앙대 이사장은 “이공계 인재가 우리나라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면서 “과거에 비해 투자 여건은 나아졌지만 이공계 인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나빠졌다”고 진단했다.

우수한 학생들은 이공계를 외면하고 다들 의대만 가려고 한다. 명문대 반도체·모빌리티 학과마저 대거 미달 사태가 났다. 매년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공계 인재만 3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R&D 예산마저 대폭 삭감돼 인재 양성 시스템이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이공계의 미래를 어둡다고 내다보는 배경이다.

한국 최초로 국산 자동차 엔진인 '알파엔진'을 개발한 이현순 중앙대 이사장도 여기에 공감한다. 지난 4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이사장실에서 만난 그는 “대한민국이 이만큼 경제발전을 하게 된 것은 신기술 개발을 통해 국가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라면서 “이공계 인재가 없었다면 선진국 대열에 선 대한민국이 가능했을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국내 이공계 인재의 해외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공계 인재의 해외 유출은 실제로 닥친 문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첨단 플랫폼 기업들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이공계 인재들이 해외로 떠나는 이유는 글로벌 기업들이 워낙 대우를 잘해주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관련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한 것도 한 몫한다. 해외에 나가 있는 이공계 인재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낄 수밖에 없다.

-이공계 핵심 인재를 국내로 돌아오게 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나.

▲우선 국내 기업이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공계 인재에 대한 처우 등을 개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이공계 분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과거에는 기술개발이 국가의 미래 산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고히 자리잡혀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는 의사는 우대해도 이공계 엔지니어는 예전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계에서 쓰는 단어만 봐도 그렇다. 요새 정치인들이 나쁜 정치를 하는 사람을 가리켜 '정치공학'에 매몰됐다고 비난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 공학이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정치와 공학이 무슨 상관이 있나. 현재 공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정부도 과학기술계를 홀대하지 말고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해 고등학생들에게 특강도 한다고 들었다.

▲현재 과학기술 영웅 36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고등학생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 이공계 전공자로서 학생들에게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능한 학생들이 이공계를 외면하고 환자를 보는 임상 의사의 길로만 가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대다수 부모가 의대를 가라고 하는데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니 관심을 갖고 듣는다. 특강에 참여한 학생 한 명이 평생 엔지니어로 살아온 것에 대해 만족하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무척 행복하다고 답변했다. 남들이 만들지 못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을 때 느끼는 쾌감은 무척 크다. 내가 개발한 신기술이 제품화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사를 압도했을 때 느꼈던 보람도 전해준다.

-최근 국내 대학에 혁신의 바람이 불면서 산학협력에 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산학협력 구조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사회 자체가 디지털화되면서 이제는 디지털 기술이 가장 중요한 상황이 됐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산학협력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고민할 때다. 2022년 과학기술유공자 정책제안을 통해 '디지털 혁신 시대 산학연정 협력 생태계 구축 방안'을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인구 감소, 인력 수요·공급의 미스매치, 지역 간 산학협력 역량 격차 등 현재 봉착한 문제를 산학연정 생태계 변화로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특히 지방에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만들어 대학 중심으로 지자체와 지역 산업계가 연계해 교직원, 학생을 통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 중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지방 분원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각 지역에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젊은 세대의 창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젊은 세대가 창업해서 성공할 확률은 낮다.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70~80%는 실패한다. 기술 수준이나 경험치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전 정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패하더라도 미래의 자산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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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순 중앙대 이사장은 국내 최초 국산 자동차 엔진 '알파 엔진'을 개발했던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며 “엔지니어로서 신기술을 연구하면서 살아온 것에 대해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알파엔진을 개발했을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다.

▲알파엔진을 개발하면서 어려운 일이 많았다. 알파엔진 개발에 성공한 날 같이 일하던 젊은 엔지니어들과 만세를 불렀다. (미소) 알파엔진이 개발되기 전에는 국산 엔진의 원천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주고 있었다.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독자 엔진을 만든다고 하니 미쓰비시뿐 아니라 미쓰비시와 가까웠던 회사 내부 임원들의 반대와 외압이 심했다. 잠깐 독일 출장을 간 사이 보직 해임이 돼 사무실에 내 자리가 없어진 때도 있었다. 6개월 동안 복도에 철제 책상을 하나 놓고 1000편의 논문을 읽으며 지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고(故) 정주영 회장이 조처해 다시 엔진 개발을 할 수 있었다.

알파엔진 개발에 성공한 뒤 미쓰비시 구보 회장이 찾아왔다. 끈기 있게 엔진을 만들어 냈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좋은 엔진을 개발하라고 격려했다. 구보 회장이 일본으로 돌아가 미쓰비시 직원들에게 이 상태라면 10년 내 한국에 자동차 엔진 기술을 배우러 다니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미쓰비시 직원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비웃었지만 10년 뒤 일본에서 우리 기술을 배우러 오게 됐다.

-외압을 받는 상황에서도 알파엔진 개발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한국 자동차 업계의 첫 번째 박사였기 때문에 내가 무너지면 한국 자동차 산업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국산 엔진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을 당시 미국 GM에서 일하고 있었다. 국산 엔진을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아버지께서 네가 배우고 익힌 기계 공학을 미국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으셨는데 이 말이 결정적으로 한국에 돌아오게 된 계기가 됐다. 스스로 나라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봤기 때문에 기계 산업을 발전시킬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국내 교육 문제로 넘어가서 미래 인재가 반드시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인가.

▲이제는 하나의 전공 분야만 공부해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여러 기술을 아우를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추는 것이 진짜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왔다. 티(T)자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 티자의 세로축, 즉 하나의 특정 분야에 깊은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기술, 지식(가로축)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소통 능력이다. 이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두 팀플레이로 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이 조직에서 중요해질 것이다.

-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 있나.

▲토론문화를 키우는 것이다. 유대인은 어렸을 때부터 토론을 하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창의적이다. 우리나라는 토론문화가 전무하다. 꼭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토론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토론문화가 정착이 되면 소통 능력은 자연스럽게 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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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순 이사장은 “중앙대 졸업생이 글로벌 인재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해외 대학과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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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자녀 교육에 관한 고민을 하는 학부모가 많다.

▲제일 좋은 것은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의대가 인기가 많다고 해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자신의 적성과 관계없이 부모의 권유 때문에 의대에 가면 행복하기 어렵다. 행복하지 않은데 성과를 낼 수 있겠나. 행복이라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이미 행복의 80%는 확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 대학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국내 대학의 재정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반값 등록금 등 대학 등록금이 동결된 이후 투자 재원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인건비는 상승하고 학생들이 기대하는 장학금 수준이 높아지는 상황이지만 대학 재정이 뒷받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통제만 할 것이 아니라 재정 지원 등 대학의 발전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국내 대학의 국제 경쟁력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교수진을 초빙하고 좋은 기자재를 확보해 좋은 연구 결과를 내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은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것인데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최근 중앙대를 포함한 국내 대학들이 무전공 선발 등을 내세워 학과 간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미국의 경우 대학 입학 후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전공을 정한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는 한 학년의 80%가 AI 전공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국내 대학은 학과 별 정원을 정해 학생을 선발한다.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학생의 권리인데 지금처럼 칸막이로 나눠 전공을 정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사회는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학교가 못 따라가고 있는 부분이 있다. 물론 무전공 선발을 더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

-중앙대가 해외 유수 대학과 협력을 강화해 가고 있다. 해외 대학과의 협력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앙대는 글로벌 인재 육성을 목표로 교육을 하고 있다. 해외 대학과 협업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과 해외 대학이 가진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재학생이 자매결연한 대학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우리 교수진도 해외 교수진과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앞으로 해외 대학과의 협업은 더욱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인재 시장에서 중앙대 졸업생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지원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이공계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를 해 준다면.

▲과학기술은 인간 사회에 꼭 필요한 부분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인류의 미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장 지금이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멀리 바라보고 인류의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보람을 생각하길 바란다.

◆이현순 이사장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사장, 두산 부회장, 현대자동차 부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민간자문위원,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등을 거쳐 2023년 11월부터 중앙대 제12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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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