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네번째 파업, '의사 필승' 공식이 투쟁 동력…얼어붙은 여론이 관건

네 번째 의사 총파업이 예고대로 전국단위로 진행됐다. 의사들은 이전 3번의 파업에서 모두 승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공식을 재입증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예상보다 저조한 참여와 정부의 강력 대응, 차가운 여론 등을 감안할 때 이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국 단위 대규모 의사 파업이 시작된 것은 2000년 2월 의약 분업에 반대한 의사들 4만명이 서울 여의도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연 게 시초다. 같은 해 4~6월에는 사상 첫 휴진도 강행했다.

이에 맞서 정부도 강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김재정 대한의사협회장은 집단 휴업 지시를 내리고 전공의들의 폐업을 지시해 170개 병원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이외에도 전국 3000여명의 의사가 경찰로부터 출석요구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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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산하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서울대병원강남센터 등 4개 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다.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작성한 '휴진을 시행하며 환자분들게 드리는 글'이 게재돼 있다.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우여곡절 끝에 의약분업은 2000년 8월 시행했지만 정부가 승리한 것은 아니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 10% 감축과 더 엄격해진 의사면허 취소 조건 등 실속을 챙겼다.

2014년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허가 추진에 반발해 발발한 두 번째 의사 파업도 비슷하다. 정부는 의사가 없거나 부족한 도서벽지 등에서 환자가 의사로부터 화상으로 진료받게끔 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사들은 의료 영리화와 동네병원 생존권 박탈을 이유로 즉각 반발했고, 당시 노환규 의협 회장은 전국의사 총파업을 시행했다. 전국 전공의 7200명이 파업에 참여했고, 20%가 넘는 개원의가 휴진에 동참했다. 의약 분업과 비교해 투쟁 명분이 약했지만, 결국 의사 반발에 정부는 원격의료 정책을 백지화했다.

2020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외치며 집단 휴진 카드를 꺼내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정부는 농촌 지역 전문의 부족 등 고질적인 의사 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인 의료수가를 인상하고 근무조건을 개선하는 대신 의대를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인턴, 레지던트 등이 주도해 집단으로 의료현장을 이탈하고, 의협은 이를 지원하면서 세 번째 의사 파업이 이뤄졌다.

정부는 수도권 전공의, 전임의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과 미이행 전공의 고발 등 강경 대응에 나섰지만 결국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유보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파업에서도 의협은 △의대 정원 증원안 재논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 보완 △전공의 행정 처분 전면 철회 등을 요구하며 의료 현장을 떠났다. 전문가들은 이전 파업의 학습효과가 작용해 결국 정부가 의사 손을 들어줄 것이란 믿음이 투쟁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2025년 확대된 의대 정원이 확정된 만큼 2026년 정원 조정을 위한 디딤돌로 삼거나 또 다른 카드를 관철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의사 파업에 따른 환자 피해가 속출하고, 국민 피로도도 커지는 만큼 장기화될 경우 의사들에게 불리하다. 이에 따라 쟁점 중 하나인 수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협도 당장 2025년 의대 정원 확대 철회가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는 만큼 2026년 정원 조정이나 2025년 수가 협상을 위해 파업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의협은 수가 10% 인상, 행위 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 철회 등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만큼 이 카드를 파업 협상과 연관 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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