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최소 139명의 사망자를 낳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를 두고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는 주장을 연일 펼치고 있다.
이 가운데 인근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긴밀한 소통을 강조하다 푸틴 대통령의 주장과 어긋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26일 미국 CNN 방송 · 벨라루스 벨타 통신 등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테러범들은 처음에 우크라이나가 아닌 벨라루스로 들어갈 계획”이었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벨라루스로 갈 수 없었다. 우리가 즉시 보안 조치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격이 시작된 지 몇 분 만에 벨라루스는 신속히 국경 검문소를 설치했고, 그들(테러범)은 벨라루스로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향을 돌려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세 나라는 모두 국경을 맞대고 있다.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신속한 소통, 긴밀한 공조 덕에 테러범을 빠르게 잡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 루카셴코 대통령의 주장이지만 문제는 이 발언이 그간 푸틴 대통령의 발언과 대치된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그간 테러범들이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다는 점이 그 증거라며 우크라이나가 테러의 배후라고 지목해왔다. 벨라루스로 도망치지 못해 차선책으로 우크라이나를 선택했다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발언과는 다르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자신들의 아프가니스탄 지부 소행이라고 공개적으로 영상을 공개하고, 서방 또한 우크라이나와는 연관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되레 IS에 서방 정보기관이 도움을 줬고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여기에 직접 관여했다는 정보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러시아 주요 인사들 또한 푸틴 대통령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배후를 IS와 우크라이나 중 누구로 보느냐'라는 현지 언론 질문에 “당연히 우크라이나”라며 많은 징후가 있다고 강조했으며, 알렉산드르 보트니코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은 “우크라이나는 중동의 무장세력 훈련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사건 발생 이후 19시간 넘게 침묵하다가 뒤늦게 입장을 내놔 비판을 받았는데, 이를 루카셴코 대통령이 옹호하려다 실수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26일 인터뷰에서 자신과 푸틴 대통령이 테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24시간 동안 잠도 자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테러는 지난 22일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139명이 사망했으며, 180명 이상이 부상했다. 러시아 당국은 현장에서 총 11명의 용의자를 체포했으며 4명이 사건 발생 이틀 뒤 법원에 출석했다.
ISIS-K의 선전매체 아마크는 90초 분량의 테러 현장 영상을 공개하는 등 ISIS-K는 자신들이 배후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지만 러시아는 진짜 배후가 우크라이나, 미국, 영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