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주력산업, 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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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 한국엔지니어링협회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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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전자, 조선, 철강과 같은 다양한 주력 수출산업을 보유한 국가다. 최근에는 국내 방산 업체들이 유럽과 동남아시아, 중동으로 진출을 확대하면서 방산 역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웬만한 선진국이라도 전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는 주력분야를 이토록 많이 보유한 나라는 거의 없다. 최근 10년 사이 K팝도 전 세계를 휩쓸며 K콘텐츠도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주력분야로 자리매김했으니 한국인의 저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필자는 다가올 미래세대 새로운 대한민국의 주력분야를 제시해 본다. 바로 엔지니어링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엔지니어링은 무엇일까? 통상 사전적인 의미로는 건설, 항공우주, 정보통신, 원자력과 같은 분야에서 과학과 기술을 융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프라를 시공하기 전에 구조물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설계하는 것이다. 정확한 설계 없이 주먹구구로 교량이 건설되면 얼마 안 가 붕괴될 것이고, 도시가 멋대로 계획된다면 난개발로 막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고부가가치 영역인 엔지니어링을 육성하고, 개발도상국은 단순시공과 조립이 주력산업인 것이다. 반도체든 전투기든 자동차든 개발도상국은 조립을, 선진국은 설계를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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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산업 개념도

대한민국은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수많은 인프라를 단기간에 구축했다. 경부고속도로와 부산항을 개발해 수출한국의 초석을 다졌다. 또 한강종합개발과 소양강댐을 건설해 서울의 치수와 확장을 꾀했고, 나아가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한국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한국의 건설능력이 전 세계급에 올랐는데, 동북아 허브공항인 인천공항과 이순신대교를 필두로 한 수많은 장대교량이 그것이다. 전국을 바둑판으로 배열한 7×9고속도로망과 전 세계 5개국만 보유한 고속철도를 건설했다. 일반 시민들은 이 모든 것을 건설이라는 범주로 넣어 생각하지만, 실제 전 세계수준의 인프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시공이 아닌 계획하고 설계하는 고부가가치 영역 엔지니어링산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떻게 엔지니어링산업이 대한민국의 미래 주력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근 전국토를 교량으로 연결하겠다는 필리핀의 예를 들어보자. 마닐라만 32㎞를 연결하는 바탄~카비테 교량사업에 한국의 엔지니어링사가 설계를 따냈다. 깊은 수심과 태풍 그리고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 괴멸적인 파괴력의 지진까지 고려해야 하는 장대교량은 전 세계 5~6개사 밖에 설계하지 못한다. 설계비는 700억원이 책정됐다. 설계비 자체도 높은 금액이지만, 통상 설계비는 총사업비의 2~3%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총사업비는 대략 3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설계가 한국 엔지니어링사다 보니, 시공사도 현대, DL, SK와 같은 한국의 대형건설사가 참여할 전망이다. 즉, 700억원이 3조5000억원이 되는 시장인 셈이다. 지금 당장 구글맵을 켜서 필리핀을 봐라. 수많은 섬이 있지만, 제대로 연결된 곳은 단 한곳도 없다. 수십개의 교량이 연결될 필리핀 교량시장에 한국이 절반만 차지해도 조선업과 대등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 다시 전 세계 지도를 보면 지중해, 남미, 아프리카에 수많은 교량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교량시장만 그럴까? 도시계획, 도로, 공항, 상하수도를 비롯해 원자력까지 반도체, 자동차의 매출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인프라 시장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우리는 1970~1980년대에 중동 건설붐의 수혜를 받아 경제가 성장했다. 하지만 그때는 저부가가치 단순시공 위주의 시장이었지만, 현재 GDP 10위, 인당 GDP 3만4000달러의 경제대국인 한국에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지금 중국이 동남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단순시공에서는 절대적 경쟁력을 갖고, 중동 건설노동자의 대부분이 인도, 파키스탄인 이유기도 하다. 결국 전 세계 인프라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영역인 엔지니어링산업이 선봉에 서야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엔지니어링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미국과 캐나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 단순시공 시장에서 전 세계 30%를 점유했다. 하지만 지금은 6%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20년 사이에 미국은 돈 안 되는 단순시공은 버리고 고부가가치 영역인 엔지니어링에 집중했다. 특히 엔지니어링산업 가운데 가장 고부가가치인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컨설턴트(PMC)-발주자 권한 대행과 투자개발사업(PPP)-민자사업을 육성하며 전 세계 엔지니어링의 점유율을 10%에서 캐나다와 함께 43%까지 신장시켰다. 이런 현상은 비단 북미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엔지니어링 선진국인 유럽 그리고 신흥강호인 싱가포르, 호주에서도 볼 수 있다. 엔지니어링산업은 대한민국의 앞으로 100년을 책임질 미래성장 산업으로 가능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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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23년 ENR TOP 225

그런데 국내에서는 토건족의 일파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아직도 1970~1990년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불공정한 계약제도로 인해 성장의 한계를 맞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또 박태준 회장이 포항제철을 설립해 철강을 수출한다고 했을 때, 정주영 회장이 포드사의 합작을 거절하고 포니라는 자체 자동차 모델을 출시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안 될 거라고 비웃거나 극심한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반도체, 철강, 자동차는 2024년 지금의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핵심 분야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 엔지니어링은 그 능력만큼은 세계적인 수준에 다다랐다. 다만 사회적인 인식의 개선과 정부 차원의 지지 그리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엔지니어링 환경만 마련된다면 엔지니어링산업이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주력산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해경 한국엔지니어링협회 협회장

〈필자〉 이해경 협회장은 연세대에서 토목공학과 학사·석사 졸업 후, 경북대 토목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설교통부에서 근무 후, 민간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근무했다. 이후, 엔지니어링 기업을 창업해 기술자로서, 경영자로서 30여년간 종사했다. 한국도로기술사협회에서 회장을 역임했으며, 2020년부터는 한국서비스산업총연합회에서 부회장으로, 한국엔지니어링협회에서 협회장으로 활동 중에 있다. 이외에도 세계도로협회 한국위원회의 운영위원,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엔지니어링기술자들의 권익신장과 산업의 위상제고를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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