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로 '죽음의 땅'이 된 체르노빌에서 방사성 물질에 면역력을 가진 벌레가 발견됐다.
8일(현지시간) 미국 과학전문매체 라이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미국 뉴욕대 연구팀은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 주위에 사는 벌레를 분석한 결과 방사성 물질에 면역력을 가진 선충이 발견됐다며 관련 논문을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1986년 4월 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원전 4호기가 폭발한 이래로 소련(현재 우크라이나 지역) 키에프시 북서쪽의 프리피야트 마을을 포함한 주변 지역 30km는 출입금지구역(CEZ)로 사람의 접근이 차단됐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 인적이 닿지 않자 다양한 동식물이 번성하게 됐고, 세계 여러 과학자들은 CEZ에서 서식하는 동물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뉴욕대 연구팀은 특히 유전체(게놈)가 단순하고 번식이 빠른 벌레 '선충'에 주목했다. 우리에겐 실모양의 기생충으로 잘 알려진 선충은 회복력이 빨라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견뎌낸다. 이에 피폭 위험이 있는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응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 것.
연구팀은 전 세계 다양한 환경에서 채취한 선충 5마리와 CEZ 지역에 있는 15마리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해 비교했다.
그 결과 체르노빌에 사는 특정 선충의 유전자가 방사선으로부터 전혀 손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개구리 등 동물이 신체변화까지 일으킨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뉴욕대의 소피아 틴토리 생물학과 박사 후 연구원은 “선충의 회복력과 극단적인 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는 생명력을 알 수 있다”면서도 “다만 우리가 수집한 선충이 해당 지역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때문에 40년 동안 정확히 어느 정도로 방사능에 노출됐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의 주요 저자인 매튜록맨 생물학 교수는 선충류의 저항성에 대해 “이 벌레는 어디에나 살며 수명이 짧기 때문에 일반적인 척추동물이 성숙하기 전에 이미 수십 세대의 진화를 거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틴토리 연구원은 “이번 결과가 체르노빌 지역이 이제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