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로 계획보다 비용 2배↑
설비투자 영향, 계획변경 우려
삼성전자가 미국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팹)에 빨간불이 켜졌다. 인플레이션으로 건설비가 치솟아 삼성전자가 계획한 투자비가 건설로 소진될 위기다. 반도체는 건물 자체보다도 내부에 설치되는 노광기 등 설비가 중요한 산업. 천정부지로 오른 건설비에 설비투자가 지연되거나 사업계획이 변경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작년 한해 테일러 팹 건설에 47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6조27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건설비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삼성은 인건비와 자재비 등 순수 팹 건설에만 작년 한해 6조원이 넘은 돈을 썼다.
테일러 팹은 지난 2022년 상반기 착공, 지금까지 1년 6개월 정도 공사가 진행됐다. 이 기간을 고려하면 삼성이 지금까지 투입한 건설비는 70억달러, 우리 돈 10조원을 초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건설비가 늘면서 당초 투자계획을 변경해야 할 정도로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테일러 팹 결정 당시 총 17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상반기부터 2024년 말 공장을 가동하기까지 투자금을 170억달러로 설정하고 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전체 투자예산의 40%(170억달러 중 70억달러)를 건설비로 썼으며, 완공까지는 앞으로 1년이 더 남았다.
47억달러를 기준으로 삼성이 2년 6개월 간 투입하게 되는 공사비를 추산하면 총 117억달러, 전체 투자예산의 70%가 건설비로 쓰인다는 얘기다.
이 수치는 인건비와 자재비를 제외한 순수 건설비다. 최소한의 건설 비용이다. 관련 추가 비용까지 계산하면 당초 삼성이 세운 투자금의 80%까지 고스란히 건설비로 빠져나갈 수 있다.
이같은 부담의 근본적인 배경은 미국 인플레이션이 꼽힌다.
삼성 테일러 사안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작년 한해 동안 오른 공사비 상승은 업계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급증했다”며 “작년 말 기준으로 팹 건설 비용이 당초 계획 대비 두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건설비 상승은 장비 투자계획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삼성은 장비 투자를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반도체 팹의 핵심은 설비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광기 등 첨단 장비들이 갖춰져야 하는데, 건설비로 투자자금이 빠져 나가고 있어 장비까지 연쇄 영향을 미칠 지 우려된다.
삼성 테일러 팹이 시스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팹이고,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초미세 회로구현 등 첨단 공정이 필요해 설비 구축에 상당한 금액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장비까지 총 투자금액이 300억달러를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 팹을 짓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국내 투자와 견줘 이점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적절한 반도체 보조금이 보장되지 않으면 향후 미국 내 추가 투자 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아직 국내외 기업들의 반도체 팹 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집행하지 않았다. 최근 인텔과 TSMC의 미국 내 반도체 팹 건설 일정이 지연되고 있는데, 보조금 문제가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일정 지연 없이 테일러 팹 건설 및 가동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