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기후위기 대응, 투자자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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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식 IBK기업은행 ESG경영부장(공학박사) yuinsik@ibk.co.kr

최근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주요정당이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금융 공약을 발표하고 있고, 정부의 정책추진도 활발해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펀드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반면, 미국에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가 위축된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유럽에서는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가 작년 12월 과학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BTi)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유엔(UN)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에서는 파리협정 채택 당시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금융의 역할을 언급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도 작년 제6차 보고서를 통해 기후금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두가 가야 할 길이라 공감하면서도 기후금융이 이처럼 흔들리는 이유는 뭘까.

마크 카니는 저서 '초가치'를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의 직접 동기가 없는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에 비용을 떠넘기는 것이라 표현하며 수평선의 비극이라 묘사했다. 빌 게이츠는 저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기후는 비선형적 문제라 선형적 사고에 익숙한 호모 사피엔스는 과소평가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서술했다. 인간은 향후 2년 내 일어날 변화는 과대평가하고, 향후 10년 내 일어날 변화는 과소평가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지 마셜은 그의 책 '기후변화의 심리학'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을 오래 쳐다보기 어려워한다며, 어떻게 우리 뇌가 기후변화를 무시하도록 프로그램되어있는지 설명했다.

투자자를 포함한 인간의 뇌는 기후위기의 급진적인 파급력을 인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단기 불확실성을 핑계로, 기후위기 대응 투자의사 결정을 미래로 이연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 교수 브루스 어셔가 저술한 '넷제로 투자'에서 언급한 투자자의 딜레마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 행동지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국제결제은행(BIS) 등 세계 금융 규제 당국은 자산에 대한 기후 위험성을 미리미리 반영하지 않고 미래의 한 시점에서 단번에 반영할 경우, 자산가격이 급락하면서 세계 경제가 급랭 되는 기후 민스키 모멘트를 이미 경고한 바가 있다. 투자자들은 기후위험에 노출된 자산가치가 서서히 하락한다고 안이하게 가정하지만, 시장이 갑자기 집단적으로 자산가격을 재조정하게 되면 투자자들은 대응기회를 놓칠 수 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는 투자자가 관리해야 할 위험성일 뿐일까. 영국, 독일 등 탈 탄소와 경제성장을 함께 달성한 사례들을 볼 때, 기후위기는 투자기회이기도 하다. 자산의 재조정 과정에서 오히려 성장하는 자산군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린 수소를 비롯한 신재생 에너지, 직접 공기 포집(DAC) 기술 등 미래 산업군은 적극적인 투자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기후위험을 반영한 선제적 자산 재평가와 미래 성장기회 탐색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중장기에 걸쳐 양호한 투자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투자 방향성 전환과 그 실행의 시점은 미래로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문제는 우리 모두가 목표로 하는 2050년까지 지속될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점진적 수위를 높여가며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터넷처럼 탈탄소화는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고, 금융은 친환경 기술 쪽으로 흘러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뉠 것이란 점이다. 온실가스 농도가 한계 수준을 넘으면 기후재앙을 극복할 기회는 없다. 기후위기는 우리 인류가 과거에 접해봤거나 해결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도전과제이다. 행동을 주저하는 인간의 본능을 뛰어넘어 합리적 투자 결정을 적기에 내림으로써, 투자자의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 기후금융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플랜B는 없다. 우리에겐 플레닛B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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