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과학자본의 분배가 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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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사이콘 대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24년 연구개발 예산을 확정하는 과정 말이다. 예산이 삭감되고 증액되는 절차에서 과학 기술계에 비수를 꽂은 용어가 있다. 단언컨대 'R&D 카르텔'이다. 부당한 공동행위를 일컫는 '카르텔'의 인용은 과학기술계를 뜨겁게 달궜다. 과학기술공동체의 한 해 생존과 직결되는 살림 규모를 결정짓는 것이니 예민할 수밖에 없다. 급기야 조성경 과학기술부 제1 차관은 강연을 통해 '대한민국 과학기술 혁신과 구조개혁 과정에서 카르텔의 존재'에 대해 설명과 설득을 위해 과학 기술계와 소통에 나섰다.

'R&D 카르텔'이란 용어의 인용은 과학기술계 입장에서는 존중을 침해하는 상처 되는 말이다. 그러나 비효율적인 연구개발사업의 관행을 지적한 자성과 혁신을 촉구하는 냉정한 지적으로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다. 양날의 검처럼 날카롭고 불쾌하지만, 그간 했던대로라는 습관에서 불합리한 예산의 누수와 낭비를 살피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2024년 연구개발 (R&D) 예산은 26조5000억으로 확정되었다. 당초 정부안에서 삭감된 25조9000억원보다 약 6000억원이 증액되었지만, 전년 대비 삭감 폭이 4조6000억원으로 14.7% 감소한 규모다.

이쯤 되면 '어떻게 확정예산에 맞게 규모 있는 살림을 살 것인가?' 과학기술계는 섬세한 살림살이를 강구해야 한다. 예산을 절감하고 조정하는 합리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한 수를 놓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변함없는 가치의 기준은 무엇인가? 공공기관의 이해와 이익에 기반한 공동행위가 아닌 과학 자본의 공정한 사회 분배를 고민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사회의 중요한 사회자본이란 가치와 명분이다. 공정한 '과학 자본의 사회 분배'라는 관점에서 중심을 잡고 판단해야 한다. 이는 과학기술이 사회 수용성을 높이며 공진화를 이끄는 사회자본이자 공공재라는 인식이다. 집단의 공동 이익을 위한 행위보다 우선될 때 R&D 카르텔이란 불편한 맥락을 끊어 낼 수 있다.

현실적으로 그간 대규모 과학문화행사를 위한 공정한 자본 분배에 대해 돌아보고자 한다. 의사결정자들 의전과 겉치레를 위한 예산 집중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보여주기식 하드웨어가 중요하니 양질의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여력이 없다. 가용 될 수 있는 자본의 한계는 있다. 주객이 전도될 수 밖에 없다. VIP를 위한 자본의 투입이 과학 소외 계층이나 일상의 과학을 누리고자 모여든 실수요자들의 이해보다 앞선다. 공공의 입장에서 꾸려진 연구성과 전시는 사회 소통을 위한 참여자 수요를 충족하는 차별화가 아쉬운 기관 홍보물 연속이다.

과학기술계 공공의 인프라 또한 사회자본이다. 잉여된 공공의 과학 인프라를 지역 사회를 위해 환원하고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공동의 행위와 이해가 우선되는 실정이다. 과학 공공기관의 공동의 행위가 우선 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 자본의 본질과 사회 가치에 근거한 공공의 과학 자본를 분배할 수 있는 제도적 법적 근거가 필요한 이유이다.

과학기술의 진화 속도를 사회가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과학 자본의 집단 이익에 앞선 불공정한 분배와 유통은 과학 소외 계층을 만든다. 이는 불평등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과학 자본이 순환되고 환원되는 환류와 활성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과학기술계의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과학 자본의 공정한 분배의 기준은 사회 가치를 인식하는 합리적인 판단과 규모를 이끄는 과학 자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근영 사이콘 대표 geuny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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