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선익시스템과 캐논토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8.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를 결정하면서 일본 캐논토키 때문에 애를 먹었다. 8.6세대로 OLED를 만들려면 이에 맞는 증착기가 있어야 하는데, 캐논토키가 독점적 사업자다보니 너무 고가였던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캐논토키는 삼성디스플레이에 증착기와 챔버 등 필요 시스템 일체 비용으로 1조5000억원을 요구했다. 반면 삼성디스플레이는 1조원 이상은 부담이 컸다. 양사 입장 차이가 상당했지만 수개월간 이어진 협상 끝에 합의점을 찾았고, 8.6세대 OLED 투자가 이뤄지게 됐다.

전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8.6세대 OLED 양산에 나선 건 삼성디스플레이가 최초다. 회사는 스마트폰 중심인 OLED를 태블릿·노트북·모니터 등 스마트폰보다는 화면이 크면서 TV보다 작은 '중형'으로 확대하기 위해 8.6세대 투자를 결정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2026년까지 4조1000억원을 들여 충남 아산에 생산라인을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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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D 공정별 장비 국산화 현황

증착기는 디스플레이 제조에 있어 핵심 중의 핵심이다. OLED는 유기물을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다. 유기물을 화소(픽셀)로 만드는 공정이 증착이고, 이를 실현하는 장비가 증착기다. 삼성디스플레이가 8.6세대를 세계 최초 투자했듯이 8.6세대 증착기도 세상에 없던 설비다.

당연히 고가가 될 수 밖에 없겠지만 캐논토키 사례는 소재·부품·장비 기술의 중요성과 국산화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을 넘어 뼈아프다. 캐논토키 증착기는 1조원 안팎에 거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8.6세대 전체 투자 예산 4조원 중 1조원이 증착기 구입에 쓰였다는 얘기다.

캐논토키의 기술력과 경쟁력은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OLED 1위 국가에 그와 같은 위상을 갖춘 장비사가 없다는 건 모순적인 대목이자 반성할 부분이다. 산업부 출신의 한 인사는 “국내 OLED 증착 장비가 없었던 건 아니었고, 일본도 당시엔 스타트업이자 벤처기업이었다”며 “초기 경쟁에서 국산 장비를 육성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여기서 국내 장비는 선익시스템을, 일본은 도키, 지금의 캐논토키를 뜻한다(토키는 캐논에 인수됐다).

OLED를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으로 육성할 때 소부장과 함께 균형 성장을 추진했다면 어땠을까. 단적인 예로 캐논토키와 선익시스템의 경쟁체계나 구도를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캐논토키에 막대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거나 장비를 공급받기 위해 줄서야 하는 손해와 수고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8.6세대 투자 붐이 일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이어 중국 BOE가 투자를 선언했고, LG디스플레이도 검토 중이다. 증착기를 어떤 걸 쓸지 고민할 것이다. 디스플레이 업계에 입김이 쎈 애플은 검증된 장비를 선호해 그동안 캐논토키 장비 도입을 요구했지만 글로벌 시장 및 투자 환경 변화로 선익 증착기 사용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선택은 미정이나 변화가 일 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세계 1등인 제품은 없다. 캐논토키가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디스플레이 업체와의 협력 등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국내 장비 경쟁력이 뒤처진다면 자체 노력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윤건일 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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