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비엠이 삼성SDI에 44조원 규모 양극재를 공급한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배터리 업계가 부침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나온 초대형 계약이다. 에코프로비엠 양극재는 삼성SDI에 공급돼 현대자동차가 유럽에 출시할 차세대 전기차 등에 적용된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1일 충북 청주시 본사에서 삼성SDI와 양극재 중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3일 밝혔다. 하이니켈계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양극재를 내년 1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총 5년간 공급하는 내용으로, 금액은 약 43조8676억원이다. 최근 판매 단가 기준으로 양사가 산정한 금액이다. 연간으로는 약 8.8조원에 이르며, 계약 총액은 에코프로비엠 지난해 연간 매출(5조3576억원)의 8배를 뛰어넘는다.
에코프로비엠은 내년 물량은 포항사업장에서 만들어 삼성SDI에 공급할 계획이며, 내후년부터는 헝가리 공장에서 생산해 공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1조3000억원을 투자, 연간 생산 능력이 10만8000톤인 양극재 공장을 헝가리 데브레첸에 건설 중이다. 내후년부터 양산에 돌입할 예정으로 삼성SDI가 헝가리에서 운영 중인 배터리 공장에 납품된다.
양사의 이번 '빅딜'은 공격적인 증설로 양극재 초격차를 추진하려는 에코프로비엠과 유럽 현지 생산 체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삼성SDI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비엠은 국내 업계 최초로 헝가리에 진출했다. 한국, 헝가리에 이어 캐나다까지 공장을 건설 중이다. 글로벌 3각 체제로 후발주자와 격차를 만들고, 핵심 시장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SDI는 헝가리 공장을 유럽 전기차 시장 공략의 전진 기지로 키우고 있다. 30기가와트시(GWh)가 넘는 1·2공장을 갖췄으며 이곳에서 배터리를 만들어 BMW, 폭스바겐 등 유럽 완성차에 공급 중이다.
특히 양사의 이번 협력 배경에는 현대자동차가 있는 것으로 풀이돼 주목된다. 삼성SDI는 헝가리 공장에서 니켈 비중을 91%까지 끌어올린 6세대 각형 배터리(P6)를 만들어 현대자동차가 유럽에 출시하는 전기차에 납품할 계획이다. P6는 하이니켈 NCA 양극재와 실리콘카본나노(SCN) 소재를 적용한 삼성SDI의 차세대 배터리다. 삼성SDI는 오는 2026년부터 P6를 7년간 공급하기로 했는데, 이 P6의 핵심인 NCA 양극재를 에코프로비엠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완성차 탑재를 위해서는 미리 배터리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재 확보가 필수다.
이번 계약으로 에코프로비엠과 삼성SDI의 협력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양사는 2011년부터 10년 이상 양극재 거래선을 구축해왔다. 2021년에는 소재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양사 합작사인 에코프로이엠을 설립하기도 했다. 에코프로가 삼성SDI에 공급한 양극재 누적 물량은 현재까지 20만톤에 육박한다.
주재환 에코프로비엠 대표는 “에코프로와 삼성SDI는 상호 신뢰의 파트너십 아래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 위상 강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번 장기공급 계약이 양사 협력관계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현 삼성SDI 부사장은 “하이니켈 양극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에코프로의 양극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음으로써 삼성SDI 셀 경쟁력도 높아지고 있다”며 “이번 장기공급 계약이 삼성SDI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