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장단 인사 키워드는 '안정·미래·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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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27일 발표된 삼성전자 2024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의 키워드는 '안정·미래·혁신' 3가지로 압축된다. 내년 취임 3년차에 접어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기존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가운데 필요한 곳엔 젊은 리더를 발탁하고, 미래 준비를 위한 별도 조직을 신설함으로써 세마리 토끼 잡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이날 삼성전자 인사는 12월 초순에 발표되던 예년과 달리 그 시기를 앞당기면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2020년 이후 삼성전자가 11월에 내년도 인사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속도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연이어 분기이익 1조원을 밑도는 등 실적 부진을 반복해 반전이 필요했던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DX부문(모바일·가전)을 담당하는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과 DS부문(반도체)를 담당하는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을 유임, 2인 대표체제를 유지하는 선택을 했다. 올 들어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지만 주된 이유를 전반적인 글로벌 시장 수요 침체의 영향이 컸다는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특히 3분기 들어 영업이익이 2조4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 회복 분위기 속에 조직을 흔들기보다는 내실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

그동안 한종희 부회장이 겸직하던 DX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업부장에 부사업부장으로 있던 용석우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배치한 것도 같은 의미로 풀이된다. 영상디스플레이 분야 현업 전문가이자 1970년생 젊은 리더인 용 사장이 새로 온 만큼 한 부회장의 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용석우 신임 사장은 TV 개발 전문가로 2021년 12월부터 개발팀장, 2022년 12월부터 부사업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기술·영업·전략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업 성장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승진과 더불어 삼성 TV 사업의 1위 기반을 공고히 할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TV 사업 부담을 일부 덜어낸 한 부회장은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힘쏟을 전망이다. 이번 인사에서 새로 조직된 부회장급 조직 '미래사업기획단'이 한 부회장이 맡고 있는 DX부문 직속으로 배치된다. 미래기획사업단은 기존 핵심 먹거리인 반도체·가전·모바일 이외의 새로운 사업 분야를 육성할 전담 조직이다. 앞서 8월 '세상에 없는 기술'을 위해 DX 산하에 구성한 '미래기술사무국'도 이곳에 통합될 것으로 점쳐진다.

전영현 부회장이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아 한 부회장과 함께 보조를 맞춘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킨 주역 중 한 명이다. 삼성SDI 대표 역임 후 이사회 의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삼성전자는 전 부회장이 풍부한 경영노하우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바탕으로 10년 후 패러다임을 전환할 삼성의 미래먹거리 발굴을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DS부문은 경계현 사장이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을 겸임하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경 사장은 올해 반도체 사업 실적이 나빴지만 유임과 함께 SAIT까지 총괄 관리하게 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하반기 업황 회복세를 타고 조기 흑자전환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경 사장 인사는 실적개선과 기술격차 유지라는 투트랙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경 사장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반도체와 파운드리 역량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생산과 R&D를 함께 총괄한다.

DS부문의 각 사업부장(사장)도 모두 자리를 지켰다.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사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 체제를 이어간다는 의미다. 시장이 바닥을 치고 반등하는 시점에서 기존 사업부장 역량을 발휘할 새로운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메모리 분야에 막대한 투자에 돌입, 시장 주도권을 되찾으려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투자 전략의 주축인 이정배 사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시스템LSI사업부와 파운드리사업부도 시장 요구에 대응, 현 전략 기조를 유지하는 쪽으로 힘을 실었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엑시노스'로 대표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사업을 강화하고, 갤럭시 전용 AP 개발 및 적용을 위해 모바일(MX)사업부와 긴밀한 협업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박용인 사장을 중심으로 한 조직 안정화로, 산적한 과제를 하나씩 풀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파운드리사업부도 첨단 공정 수율 안정화로 고객(팹리스) 확보가 한창인 만큼 무리한 조직 변화 대신 최시영 사장 체제를 굳힌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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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2024년도 사장단 인사

당초 3인 대표이사 체제 가능성이 제기됐던 노태문 MX사업부장 사장도 변경 없이 유임됐다. 삼성전자는 기존 2인 대표이사 체계를 유지하는 대신, 폴더블폰 성공에 이어 인공지능(AI) 등 혁신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줄 것을 노 사장에게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 사장은 애플과 화웨이의 폴더블폰 추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1위를 수성과 생성형AI 가우스를 접목한 SW 분야 혁신을 추진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김원경 DX부문 경영지원실 글로벌퍼블릭어페어(Global Public Affairs)팀장 부사장의 사장 승진을 통해 글로벌 무역장벽 대응 역량도 강화했다. 글로벌퍼블릭어페어실은 해외 정부와 기관을 상대로 각종 규제 리스크의 대응·관리를 책임지는 조직이다.

김 신임 사장은 외교통상부 출신의 글로벌 대외협력 전문가로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 마케팅전략팀장, 북미총괄 대외협력팀장을 거쳤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주요 국의 무역·환경 규제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협력관계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예년과 비교할 때 소폭의 변화로 경영 안정에 힘을 실었다”라며 “글로벌퍼블릭어페어실 강화로 대외 글로벌 리스크에 선제 대응하고, 미래사업기획단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힘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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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