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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기 경북대 명예교수·한국전자파학회 명예회장

아마 1960년대 초중반이었나 보다. 일제시대 한용운 선생, 최남선 선생 그리고 오세창 선생과 같은 많은 애국지사가 옥고를 치렀던 경성감옥이 광복 후 마포형무소로 개칭된 채로 존치돼 오다가 역사 뒤안길로 사라질 즈음에 필자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었다. 그 시절, 그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형무소 내 연못을 정리하면서 그물에 잡힌 많은 물고기의 펄떡이던 모습을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봤었다. 철거 직전의 망루와 초소를 뛰어다니며 놀던 철없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본다. 기념관 하나 없이 역사에 대한 부담감만 남긴 채 그 공간에는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섰다.

1970년대 초 필자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당시 우리나라 일부 수험생은 수학과 영어 과목을 일본 대학 입시 문제집으로 공부했다. 필자 또한 그러한 서적을 구입해 풀었다. 그때 당시 우리나라 수학 수준이 일본에 비해 수십년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1970년대 초중반에 어두운 대학 교육 현실에서도 학생들 학구열은 크게 누그러들지 않았다. 당시 이공계 대학 지적 분위기 한 단면을 볼 때 인상적인 점은 수리 물리학 분야에서 어렵다고 알려진 아프킨(Arfken), 매튜(Mathews), 그리고 힐데브란트(Hildebrand)와 같은 저자 책이 널리 읽히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 내용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직접 작성한 풀이집이 돌아다닐 정도로 수학분야에 대한 대학생 관심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대학에서 교편을 시작한 필자 기억으로는 대략 2000년을 전후로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의 학력 저하에 관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공계 수강생이 이른바 기초 수학 이해조차도 준비돼있지 않은 상태로 강의실에 앉아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또한 대학 교양강좌가 학점 따기에 수월한 과목으로 도색되어 간다고도 했고, 대학 및 대학원에서 강의 내용이 조금 어려우면 학문 내용에 관계없이 수강 기피 대상이 된다고 했다.

일관성이 부족한 교육 정책과 기업 수요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여기에 학생들의 학력저하 요인까지 겹쳐서 대학 본연의 수리물리적 교양이나 인문사회학적 교양 수업의 내실을 기하기가 힘든 상황으로 되어가고 있다.

정부는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분야 기술이 인류 문명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는 전망에 2025년부터 초중등 교육에 AI를 반영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을 도입하고 영어 및 수학과목에도 AI 기술을 도입해 독자적 AI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의미다.

그러한 시대 적응 또는 선도적 기술 도입 계획 수립에도 기본적인 수리물리 교육 분야 재정립과정이 매우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2023년도 노벨 화학상 분야에서 양자우물(Quantum well) 소자와 관련해 노벨 화학상이 결정된 것을 보고 우리나라는 전공간 지나친 세분화를 현명하게 극복해 전자공학 교육과정에서도 기본적인 화학교육을 포함한 보다 포괄적인 과학 교육이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언젠가 독일 드레스덴 학회에서 일본 원로교수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 일이 있었다. 필자는 당시 일본에서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을 기억하고 원로교수에게 수상자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원로교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제 석사과정 학생이었는데 재학시절 성실했지요”라고 말했다. 약간 호들갑을 포함한 답변을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대답이 너무 간략해서 뻘쭘하기까지 했다.

국가 역사를 결정짓는 국가경쟁력을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강화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교육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젊은 시절에 수리물리학 분야와 같은 심도가 깊은 내용의 교육을 가르쳐야 한다. 실제로 그런 젊은 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이 후에 국가방위산업의 개발에 소중한 기여를 했다. 현재 중등 교육과 대학의 교육 내용이 역사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기우일까?

조영기 경북대 명예교수·한국전자파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