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이 혁신과 성장을 담보할 것이란 믿음은 우리의 경험에서 왔다. 1971년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0.31%에 불과했다. 2008년까지 R&D 지출은 GDP의 거의 3%로 10배 증가했고, 2021년 우리 R&D 지출은 GDP의 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 됐다. 이 기간 동안 1인당 GDP는 1971년 290달러에서, 2006년 2만달러를 넘어섰고, 2021년에는 3만 5000달러가 됐다.
1960년대말 개발된 통일벼는 태풍과 병충해에 강했고, 생산량은 기존 볍씨 대비 30% 이상 많았다. 농촌진흥청의 이름 짓기 현상모집에서 통일로 정해진 것엔 경제 부흥의 염원도 담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올 5월 누리호로 우리는 자국산 우주 발사체로 자국산 위성을 궤도에 올린 7번째 국가가 됐다.
분명 과학기술이 만들어갈 미래 우리의 모습은 밝다. 하지만 동시에 과학기술계에는 우려도 남아 있었다. 지금처럼 계속하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잰걸음을 잠시 멈추고 재정비가 필요한 지에 대해 말이다.
2019년 이후 정부 R&D 예산은 2019년 20조 5000억원이던 것이 2020년 24조 2000억원, 2021년 27조 4000억원, 2022년 29조 8000억원, 2023년 31조 1000억원으로 단 4년 만에 30조원대가 됐지만 이것에 관한 중장기 투자 계획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R&D에 관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이란 보고서는 부문별 효율화 방안을 제시하는 정도였거나, 2019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중장기 투자전략도 정부R&D 20조원 시대의 예산의 투자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였다.
과학기술계도 이런 문제에 눈을 감았던 것은 아니다. 정부 연구개발비 20조원을 앞둔 2016년에 이미 과기계의 잘 알려진 한 인사는 이런 우려를 남기기도 했다. “정부 R&D 과제 기획·선정·평가가 전문성·공정성 미흡으로 부실을 초래한다…정부 R&D 과제의 성공률이 너무 높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기획 전문가의 '셀프 과제'가 선정되고 있다.”
이점을 고려한다면 얼마 전 정부 R&D의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은 더없이 필요한 것었겠다. 더욱이 요즘처럼 “기술 패권 경쟁, 총칼 없는 전쟁”이라는 한 문장이 과학기술의 위치와 역할을 잘 묘사한 적이 없었기도 하다. 나아가 국제협력은 안보에서 경제로, 그리고 이제는 기술로 그 외연이 확장되고 강화되고 있다. 그동안 연구개발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었다는 자책도 있다. 주가 인프라 구축인 사업이 연구개발로 포장된 적도 있다고 들린다. 기업의 기술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는 다른 여러 전략이 적용되어야 함에도 예산을 나눠주는 손쉬운 방법에 안주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자신의 예산이 축소된다면 누군들 반길 리 없다. 하지만 부실한 과제가 기획되고 선정되고 있다면, 외양만 그럴듯한 보고서로 예산을 타는 일은 있다면, 불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밤새도록 연구실의 불을 밝히고 창밖이 훤해지고서야 허리를 펴는 성실한 연구자들 그리고 과학기술계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과학기술혁신본부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 새로운 정부 R&D 투자 방향을 수립해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 연구현장에서 실현되도록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정부 연구개발사업의 성과평가방안도 큰 폭의 개편이 따라야 하겠다. 하지만 이 무게를 져야 하는 건 혁신본부만이 아니다. 모든 정부부처가 자신의 분야에서 R&D 성과를 한 단계 도약하는데 힘을 모아줘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책임도 당연히 무거워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국가와 국민이 과학기술계에 부여한 재량권과 자율성에 온전한 신뢰를 확보하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에 그랬듯 앞으로도 과학기술은 우리를 존경받고 모범적인 일류 국가로, 우리의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세워줄 것이다. 과학기술, 오늘로 다시 도약을 시작한다.
박재민 건국대학교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
건국대 교수 박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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