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92〉정보산업의 해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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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이 1983년 1월 29일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유공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83년 1월 29일.

정부가 1983년을 ‘정보산업의 해’로 선포했다. 미래를 향한 정부의 담대한 도전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중앙청 중앙회의실에서 1983년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서는 김상협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과 국회 상임위원장, 각 정당 대표, 산업계·과학기술계 대표, 연구기관장 등 278명이 참석했다.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정보화 시대 개막’ 보고를 통해 “올해를 정보산업 육성 원년으로 삼아 정보산업 육성시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보화 시대의 서막이었다.

이정오 장관은 “세상은 제3의 물결인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SW) 산업을 중심으로 한 정보산업이 엄청난 미래 산업으로 등장하고 있다”면서 “ 정보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보산업 육성을 위한 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정오 장관은 “부존자원과 자금이 부족한 우리가 살 길은 범국민 차원에서 정보산업을 육성하는 일”이라면서 “이를 위한 정보산업 육성 시책으로 △정보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SW 개발권 보호 △전산전문대학 시범 운영 △88서울올림픽 종합정보시스템 개발 △행정 사무자동화 추진 △컴퓨터경진대회 개최 등 7대 육성 사업을 올해부터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오 장관은 “정보화 사회에 대비해 전산 인력을 양성하고 반도체, 컴퓨터, 정밀화학, 유전 공학 등 핵심 전략기술 개발에 올해부터 5년 동안 3000억원을 집중 투자해서 1980년대 말 일부 기술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이정오 장관은 “국가품질관리제를 도입, 이 수준에 도달한 제품은 정부 우선구매와 세제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보고했다.

전 대통령은 이 장관의 보고를 받고 “어려운 국제경제 상황 타개에 가장 시급한 일은 과학기술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은 “기술 개발에는 정보가 가장 중요하며, 새로운 정보와 지식 도입을 위해 해외공관과 기업의 해외 지사를 적극 활용하라”면서 “앞으로 국산 신기술 개발 제품에 대해서는 정부의 구매 보장 등 과감한 정책 지원을 하라”고 지시했다.

전 대통령은 또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기업·연구기관이 삼위일체가 돼 유기적인 정보 교류와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공공기관의 컴퓨터 도입과 관련 기술이 중복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보고회에서는 전자식구내 교환기(삼성반도체통신), 마이크로 컴퓨터시스템(금성사), 염료중간체 합성기술(대영산업·한국화학연구원), 메탈베아링(국제특수금속·한국기계연구소), 컴퓨터수치 제어선반(대우중공업), 특고압 애자기술(고려애자) 등 6건의 기술 개발 성공 사례가 발표됐다.

전 대통령은 이날 첨단 기술 개발에 기여한 유공자 6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국민훈장 동백장은 장성도 한국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서상기 한국기계연구소(현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현 한국과학우주청소년단 총재), 오세화 한국화학연구소(현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받았다. 동탑산업훈장은 김학운 대우중공업 상무, 이주형 삼성반도체통신연구소장, 이희종 금성사 부사장이 수상했다.

과학기술처가 1983년 제1차 기술진흥확대회의 보고 주제를 ‘정보산업육성’으로 정한 것은 홍성원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의 아이디어였다.

기술진흥확대회의 주무 국장이던 최영환 전 과학기술처 차관의 회고. “1982년 1월 회의를 시작으로 3회에 걸친 확대회의를 잘 치른 과학기술처는 어느 정도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1983년 1회 확대회의를 앞두고 보고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용태 당시 삼보컴퓨터 사장(현 박약회 회장), 홍성원 비서관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때 홍 비서관이 보고 주제를 ‘정보산업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 박사가 쓴 ‘제3의 물결’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었다. 실로 시의적절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당시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농업혁명의 제1물결과 산업혁명의 제2물결에 이어 컴퓨터·통신·기술이 결합하는 정보화 시대로 간다고 주장했다. 김재익 청와대 당시 경제수석도 정보화 사회에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재익 수석의 부인 이순자 전 숙명여대 교수의 증언. “남편의 지론은 경제가 지속 성장하려면 고급 인력을 이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산업과 서비스업이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보화 사회나 지식산업, 정보산업 같은 분야에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고 전자산업과 통신산업을 하나로 묶어 정보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었다.”(김재익 평전).

최영환 전 차관의 회고. “이용태 박사도 ‘우리가 정보화는 앞서 가야 한다’며 찬성했다. 이튿날 아침 이정오 장관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더니 무릎을 탁 치며 ‘아주 좋다. 이 보고를 계기로 1983년을 정보화의 원년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이 장관의 지시에 따라 과학기술처는 확대회의 보고 준비에 착수했다. 과학기술처 실무진은 회의 준비에 모든 정성을 다했다.

이 무렵 한국의 정보산업은 외국에 비해 미비했다. 국내 컴퓨터 설치 대수는 414대에 불과했다. 컴퓨터 하드웨어(HW) 가운데 주변기기를 겨우 국산화하는 수준이었다. 전산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시스템 SW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정보산업을 국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고, 반도체는 국책 연구로 진행했다. 프랑스는 정보산업을 국가 보호산업으로 정해 집중 육성했다. 일본은 정보산업을 국가 주도로 육성하면서 각종 금융과 세제 혜택을 주고, 제품 구입 시 우대했다. 싱가포르는 모든 중학교에 컴퓨터를 보급해서 정보화를 추진하고, 대학 입시에 컴퓨터 과목을 채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기술진흥확대회의에 정보산업 육성책을 보고한다는 소식에 많은 전문가와 관계자가 크게 반기면서 적극 협조했다. 과학기술처 실무진은 낮에는 사무실, 밤에는 서울 반포 P호텔을 오가며 회의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과학기술처가 발표한 정보산업육성책은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언론도 이튿날 정부 계획을 일제히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미래를 내다본 경제 도약을 위한 신성장산업 정책이기 때문이었다. 추진전략도 구체적이었다.

과학기술처가 이날 밝힌 정보산업육성책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정보산업 육성 기본방향=고급 전산인력을 양성하고 컴퓨터 마인드를 전국민에게 확신한다.

△정보산업 육성체계 확립= 정보산업육성 장기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정보산업 육성 기본법을 제정한다. 컴퓨터 표준화와 SW개발권을 보호하고, 컴퓨터 악용(惡用)을 방지한다.

△컴퓨터 도입관리=공공부문의 컴퓨터 도입 심의 기준을 강화한다. 국산 대체가 가능한 기기 도입은 최대한 억제하고, 컴퓨터 공동 이용 체제를 확립한다. 외국 컴퓨터업체의 제조 기술 한국 이전을 유도한다.

△전문 전산인력 양성=전산 인력을 1983년 9000명에서 1986년까지 3만4000명, 1991년까지 21만7000명으로 각각 늘린다. 대학과 대학원 전산교육을 강화하고, 전산학과 증설과 학생을 증원한다. 전산교육을 확대하고, 전산전문대학을 시범운영한다. 해외의 고급두뇌를 유치해서 활용하고, 국내 전산인력에 대한 해외 연수도 확대한다.

△초급 전산요원 양성=노동부 직업훈련원에 전산 교육을 실시하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전산교육을 확대한다.

△SW산업 육성=SW산업을 새로운 유망산업으로 육성하고 재정 지원을 확대한다. SW유통체제를 확립하고 SW개발권 보호장치를 마련한다. SW연구조합 운영을 활성화한다.

△정보유통체계 확립=전용 데이터망을 구성하고 공중 통산망을 단계적으로 개방한다. 데이터베이스 산업을 육성하고, 컴퓨터의 공동 이용을 촉진한다.

△행정 전산화=행정 전산화로 행정 능률을 높이고 대민서비스를 향상한다.

△전국민 운동 전개=정보화 사회 진입 첫걸음으로 전 국민 정보화 계몽운동을 벌인다. 컴퓨터마인드 확산을 위해 컴퓨터 사용을 확대하고, 전국 청소년과 학생 대상 컴퓨터경진대회를 개최한다. 컴퓨터 상설전시장을 운영하고, 사무자동화를 추진한다. 88서울올림픽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시스템 산업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기술한국의 위상을 높인다.

정부의 ‘정보산업의 해’ 선포는 정보화 시대로 가는 힘찬 진군(進軍)의 나팔소리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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