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것은 '레트로'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옵니다. 노래, 옷, 필름 카메라, 게임 등. 전자기기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바로 MZ 세대 힙스터들이 이전 세대 아이폰으로 회귀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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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 출시된 가장 최신 아이폰 기종은 14 Pro이지만, 훨씬 이전 기종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최소 팔로워가 1만 명 이상인 많은 힙스터들도 구세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이폰 SE 1 같은 경우는 아직도 이 디자인과 감성을 그리워하는 추종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야만 낫는 이 병을 두고 '아이폰 se병'이라고 불렀죠.

지금 이 병은 아이폰 se에만 속하지 않게 됐습니다. 얼마나 많은 힙스터가 구세대 아이폰을 쓰고 있는 걸까요? 수치를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SNS 둘러보기에 랜덤하게 뜬 팔로워 만 명 이상의 MZ세대 인스타그래머들 중, 신기종과 구기종을 쓰는 이들을 직접 조사해 보았습니다.

◆MZ는 왜 다시 구세대 아이폰으로 회귀했나?

이전에는 아이폰과 갤럭시로 찍은 사진을 구분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만 보아도 갤럭시와 아이폰의 사진을 구별해 낼 수 있다는 거였죠. 이전 기종 아이폰은 특유의 질감과 색감이 존재했습니다. 살짝 노이즈 효과를 준 것 같으면서도 톤 다운된 차분한 색감이 특징. 이전 세대 기종일수록 이 특징은 더욱 짙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질은 선명해지고 채도와 대비도 높아졌습니다. 지나치게 선명해지고, 지나치게 쨍해졌죠. 이런 색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 기종을 다운그레이드하는 인플루언서들도 늘어났습니다. 배우이자 인플루언서인 차정원 님도 최근 나온 아이폰의 색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전에 쓰던 10xs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SNS에서도 '감성'은 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자신만의 감성을 사진에 담기 위해 이들은 하나둘 다시 서랍장에 넣어두었던, 혹은 중고 시장에 올라온 구세대 아이폰을 구매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구세대와 신세대 아이폰의 기준

아이폰 특유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구세대 아이폰의 마지노선을 xs로 보고 있습니다.

'인덕션', '카툭튀'라고 조롱받던 카메라 렌즈의 개수를 기준으로 삼아보는 게 적당해 보입니다. 카메라 렌즈 한 개를 구세대 아이폰으로 정해봅시다. SE1, 6, 7,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XS까지 구세대 아이폰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카메라는 사실상 아이폰 감성의 종말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자,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신기종, 구기종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힙스터가 구기종 아이폰으로 회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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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이폰 6, 7, SE만 구세대 아이폰에 포함해 보기로 했습니다. 구세대 아이폰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디자인이니까요. 신기종의 기준은 인덕션(카메라 렌즈 2개 이상)으로 구분 지어 보았습니다. 인플루언서들의 기종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거울 샷'은 필수니까요. 거울에 비친 핸드폰 기종을 분석했습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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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 중, 구기종을 사용하는 이들은 약 40%(39.5%), 신기종을 사용하는 이들은 약 50%(48.4%), 두 기종을 둘 다 사용하는 이들은 12.1%를 차지했습니다. 아이폰 감성의 종말에 속하는 XS까지 포함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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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구기종을 사용하는 인플루언서는 62%, 신기종을 사용하는 이들은 30.6%, 둘 다 사용하는 이들은 7.4%나 되었습니다. 압도적으로 아이폰 구기종을 사용하는 인플루언서가 많았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두 기종을 다 사용하는 이들은 쇼핑몰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업에 필요한 사진은 신기종으로 찍고, 개인의 사진은 구기종으로 쓰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흐릿한 감성이 뭐가 좋다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뒤로 세상이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가수 이하이, 배우 강동원도 “세상을 너무 깨끗하게 보는 걸 안 좋아한다"는 이유로 시력이 좋지 않음에도 안경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에는 이들이 하는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것은 화질이 발달함에 따라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타인이 찍어준 사진을 보면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 얼굴이 이렇게 비대칭이었나? 잡티가 이렇게 많았나? 모공이 이렇게 넓었다고?”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차라리 모든 것을 흐릿하게 보고 싶어집니다. 일정 부분 흐려져야 혼자 또 생각하고 상상할 부분들이 생겨난다고 해야 할까요? 정신건강에도 이롭고요. 이러한 것들은 전부 기억과 맞닿아 있는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또렷이 눈에 들어온, 마음에 들지 않던 부분은 또 선명한 고통으로 내게 남고, 우리가 좋게 생각하는 추억, 기억들은 대부분 일정 부분이 흐릿하게 처리된 채 머릿속에 남거든요.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면 영상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경우는 드뭅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과거를 영화 되돌리 듯 플래시백 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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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이폰 특유의 흐릿한 감성을 좋아하는 이들은 아련한 추억을 기억하고 싶은 이들일지도 몰라요. 일부러 안경을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일지도 모르고요. 이 모든 걸 “흐릿함의 미학”이라고도 불러볼 수도 있겠네요.


룩말 에디터 lookma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