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디지털 혁신을 리딩하다] 한국의 '소피아 앙티폴리스'…포항

영일만 기적을 이룬 제철보국에서 디지털보국으로 전환
포항지곡벤처밸리 디지털 혁신 생태계 조성 계획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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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은 이차전지·바이오·미래차 등 미래산업과 소재·부품·철강 등 전통산업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첨단 디지털 기술을 녹여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고, 국내 산업을 선두에서 이끌어갈 가능성과 잠재력이 가장 큰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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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주여건 부족, 청년이탈,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 가속화는 여전히 대구·경북 지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대구 지역내총생산(GRDP)는 1992년 이후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고, 그나마 경북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6위권이다. 대구와 경북을 합친 GRDP 비중은 불과 8.4%이며 이마저도 매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수도권(48.1%) 대비 초라한 수준이다.

강력한 제조산업 인프라와 첨단 과학기술 기반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역량(NFC:Non-Fungible Capability)'을 손에 거머쥐고 있음에도 지역 경제 위기감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구·경북지역 강점인 산업적 기반을 발판으로 주력산업이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신성장산업을 육성할 강력한 솔루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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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는 '디지털 혁신'에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기업과 인재의 수도권 쏠림현상 극복 방법으로 지역에 디지털 혁신거점을 조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역에 디지털 신산업 입지를 발굴해 판교테크노밸리에 준하는 디지털 거점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경북도와 대구시 역시 지역산업 역량 강화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할 핵심 키워드로 디지털 혁신을 화두로 꺼내 들었다. 경북도는 포항지곡테크노밸리(가칭)를 중심으로 모든 산업에 디지털을 융합하는 디지털 생태계를 조성(경상북도 종합계획 2021~2040)하기로 했다. 대구시 역시 지역 최대 규모 소프트웨어(SW) 집적지 대구수성알파시티를 중심으로 ABB(AI·빅데이터·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혁신 거점화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지역소멸에서 벗어나고 지역을 넘어 국가 경제를 이끌 신성장산업으로써 디지털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고 있는 대구·경북지역 혁신기관의 비전과 전략, 그리고 지역 디지털 생태계를 든든히 떠받히고 있는 기술 혁신 리딩기업 8곳의 숨은 기술력을 들여다본다.

디지털 혁신이 꿈틀대는 한국의 소피아 앙티폴리스(Sophia Antipolis)…'포항'

고령화와 인구 유출, 코로나19 사태, 울진 산불, 태풍 힌남노 피해 등 복합적 요인으로 경북지역 경제는 현재 위기다.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방이 소멸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특히 경북은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산업적 기반(22.6%)이 있음에도 인구감소와 노동력 부족 등 여러 요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북은 포항과 구미, 경산을 잇는 남부벨트를 중심으로 연구개발(R&D)특구, 산업단지 등 과학기술 및 산업 인프라가 산재한 곳이다. 전기·전자정밀기기, 비금속·금속, 기계·운송장비 등 전통 제조산업이 지역총생산의 41.9%(전국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제조역량이 풍부하다. 특히 포항은 강소연구개발특구,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 체인지업 그라운드, 방사광가속기 등 경북을 대표하는 과학기술 인프라가 집적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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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산업에 디지털 기술을 융합, 디지털 혁신 거점으로 조성하기에 최적 입지가 바로 포항이다. 대기업(포스코)에서부터 철강관련 중소·중견기업, 방사광가속기라는 거대 기초연구시설, 포스텍(포항공대), 기업지원기관이 모여있는 포항테크노파크(원장 이점식)는 자타가 공인하는 클러스터 롤모델 공간이다.

'제철보국'으로 영일만 기적을 이뤄낸 포항이 '디지털보국'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포스텍과 한동대 등 4개 대학에서 한 해 동안 배출된 젊은 소프트웨어(SW) 인재는 2800명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지역을 이탈하고 있고, 지역에서 출발한 디지털 기업 역시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혁신 거점화를 통해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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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는 포항을 제철보국에서 디지털보국으로 전환, 제조산업 기반 디지털 혁신 거점을 조성할 계획이다. 경북도 디지털 생태계 조성 비전과 전략

디지털 혁신이 필요한 더 절실한 이유는 산업구조에 있다. 포항은 국내 철강산업을 이끌어온 도시답게 제조업이 38.9%를 차지한다. 정보통신기술(ICT), SW, 이차전지,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신소재 등 신성장산업 간 융합을 통해 디지털 신산업 창출 효과를 가장 크게 기대할 수 있다.

디지털 혁신거점 조성사업은 경북 거점 SW산업진흥기관 경북SW진흥본부가 맡고 있다. 롤모델로 프랑스 동남부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벤치마킹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관광도시 니스와 국제 영화제 도시 칸 사이에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소도시지만 글로벌 최고 수준 첨단과학기술 클러스터가 구축된 곳으로 유명하다. 연구소와 대학, 기업이 밀집한 포항과 가장 비슷한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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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남부 끝자락에 위치한 첨단과학기술 클러스터가 있는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연구소 전경.

소피아 앙티폴리스 처럼 포항이 디지털 혁신거점으로서 가장 큰 장점은 과학기술 및 산업 인프라와 정주여건으로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여 워케이션(일과 휴가)이 가능한 곳이라는 점이다. 특히 국내 최고 과학기술 인프라를 기반으로 글로벌 기업 인큐베이팅이 가능한 포스코 체인지업그라운드가 조성돼 있다. 체인지업그라운드에는 현재 타지에서 본사를 이전한 12개 기업을 포함, 총 113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들 기업의 회사 가치는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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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체인지업그라운드 전경

포항이 조성할 디지털 혁신거점 비전은 '기업이 모여들고 일자리가 넘치는 디지털시티-포항'이다. 우선 1단계로 포항 지곡벤처밸리에 디지털 혁신거점을 구축한 뒤 안동, 구미, 김천, 경산으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전략이다.

경북도는 이에 앞서 이미 지난해 경상북도 종합계획을 발표, 디지털 생태계 조성 비전과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경북이 보유한 제조기반 잠재력을 발판으로 지속 가능한 신성장 동력 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게 목표다. 경상북도 종합계획 실현을 위한 디지털 생태계 조성은 거점 구축을 시작으로 인재양성과 정착, 초거대 AI 실용화, 제조산업으로의 전파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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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산업 혁신을 위한 디지털 거점 조성 및 향후 확대 방안 이미지

박수영 경북SW진흥본부장은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디지털 혁신”이라면서 “지역에 디지털 거점을 반드시 구축해 지역산업 혁신과 지역 경제 활성화,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