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인류 공존은 이제 낯선 개념이 아니다.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갖춘 초거대 AI가 데이터분석을 넘어 예술 등 지적 영역까지 확산되며 장르 확장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AI 발전 미래상은 영화를 통해서 먼 미래 이야기로 그려졌다. AI 비서를 통한 업무 지시는 물론 인간이 AI와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기술은 진일보해 일상생활에서 날씨, 주요 뉴스 등 단순 주제에 대해 응답하는 AI 스피커가 등장한 데 이어 오픈AI의 대규모 언어 모델 GPT-3를 기반으로 여러 상황을 스스로 학습하고 활용하는 초거대 AI까지 현재 등장했다.
이 같은 초거대 AI 기술진화는 언어뿐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 등을 다루는 '멀티모달' 수준으로 진입한 상태다. 데이터 습득 및 이해 수준을 넘어 이를 스스로 분석하고 추론함으로써 인간의 지적 영역을 대표하는 예술 분야에서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지난해 8월 열렸던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디지털아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 창작자는 사람이 아닌 AI였다. 대상작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AI가 완성한 그림이었다. 게임 기획자 제이슨 앨런은 텍스트를 입력하면 이미지로 변환되는 '미드저니' 프로그램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처럼 예술 영역 내 AI 기술은 미드저니 등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활발한 개발 추세를 보이면서 미술지식이 없는 사람도 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예술 영역에 등장한 AI를 향한 찬반 논란도 갈수록 뜨거워진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사례에서도 당시 예술계는 이를 부정행위라 주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리지 않는 미술'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AI를 통해 완성한 작품은 과학기술을 활용한 고도화된 표절 활동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방대한 학습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AI가 만든 작품은 기존 예술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활용하는 만큼 명백한 표절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AI를 통한 작품완성에 이르기까지 작품에 대한 이용자 의도와 노력이 더해진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형태의 창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술영역 발전사를 돌이켜보면 기존 예술작품이 가졌던 한계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융합을 통한 발전이 이뤄졌다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다.
그림에 한정된 작품이 미디어 매체와 결합해 등장한 비디오아트 등 표현매체 변화를 일찍이 인정한 것이 이를 대변하는 부분이다. 이후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인터렉티브 아트 등 기술 결합형 창작이 급물살을 탄 점을 보면 AI를 통한 작품완성 또한 새로운 장르로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예술 영역 내 AI는 저작권이나 소유권 문제에서도 아직 다툼의 여지가 다분하다. 최종 작품에 대한 소유권에 있어 AI 프로그램 이용자를 인정할지, AI 프로그램 혹은 이를 개발한 개발자에게까지도 확대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 같은 논란 속에서도 AI를 활용한 예술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추세다. 실제 구글이 개발한 AI 화가 '딥 드림'은 지속적인 보완을 통해 단순 모방 수준을 넘어서 인간과 같은 수준의 창작 영역에 이르기 위한 단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기술적 진보를 인정하는 수용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I를 예술가로 인식하고 창작 영역과 그 활동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노력을 통해 AI라는 과학기술을 기점으로 한 또 다른 발전상을 가속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인희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