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가벼운 정치의 두 얼굴

정치가 가벼워지고 있다.

정치권 소식이 실시간으로 퍼지고, 수많은 이가 정치 어젠다에 의견을 개진한다. 과거보다 쉽게 정치성 의사를 표현하는 시대다. 각종 미디어에서 정치 소재 콘텐츠가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고, 정치 인플루언서 등 일반인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무겁고 어려운 이미지는 사라지고, 누구나 한마디는 할 수 있을 정도로 장벽은 낮아졌다. 그만큼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커졌다.

어두운 면도 있다. 정치적 가벼움이 이곳저곳 퍼지면서 안이함으로 변질되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해법 모색보다는 다른 이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습도 연출된다. 정치적 언행이 가벼워지면서 악습으로 평가받던 관행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가벼운 정치의 두 얼굴이다.

양측의 얼굴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관계다. 진중함만 앞세우다 보면 정치는 다시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로 남을 것이다. 반대로 대중성과 친근함만 내세우면 정쟁과 가십만 넘쳐나게 된다.

지난해 보궐선거부터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선거를 세 차례 치르는 동안의 정치성 키워드를 돌이켜보면 '생태탕' '동경아파트' '대장동' '굿판' '법카 유용' '논문 표절' 등이 떠오른다. 가장 최근 키워드로는 '청담동 술자리' '캄보디아 조명' '빈곤 포르노'가 대표적일 것이다. 세간의 관심을 끈 이슈들이지만 국가 비전과 정책보다는 일종의 가십에 가깝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의 전반적인 추세가 진중함보다는 가벼움에 쏠려 있음을 보여 준다.

일반 국민은 물론 전통 정치 영역을 대표하는 국회까지 '가벼운 바이러스'가 정치 전반에 걸쳐 퍼져 있다. 좀 더 노골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경솔' '경박'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익명게시판 악플(악의성 댓글)에서나 볼 법한 표현들이 국회의원 입을 통해 나오고, 저잣거리 술판에서나 어울릴 농담과 허풍이 의회에서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논의된다. 호통과 망신 주기, 근거 없는 의혹들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난사하니 뒤탈이 나더라도 “나는 몰랐다” “저사람이 그랬다” “유감” 정도로 무마하기 일쑤다. 지금 정치판에서 '책임'이라는 가치는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정치성 가벼움이 사회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선'을 넘고 있는 셈이다.

정치가 해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는 공적 논의가 사적 영역에서 다뤄질 때 경우다. 대통령실, 국회, 정부 등 공적 영역의 얘기가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는 농담이 될 순 있지만 시정잡배의 허무맹랑한 소리를 공적 영역으로 끌고 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적어도 정치를 직으로 삼을 것이라면 모든 사안을 공적 기준에 맞춰 재단하고 다뤄야 한다.

정치란 '뜻이 동일한 이들이 모여서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본인을 알리고 다른 이를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정책적 우위 경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정치 세력 확대는 설득 과정이지 선동 과정이 아니다.

정치성 가벼움은 정치 대중화라는 긍정적 요인을 가져왔다. 과거 '정치'라는 단어가 일반인에게 낯설고 무겁게 다가왔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은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변화다. 하지만 '가벼움'과 '책임감' 사이의 균형은 지켜져야 한다. 어쩌면 우리 정치는 다음 단계를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성장통이 열매를 맺기 위해선 정치의 권위성은 낮추되 책임성은 키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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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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