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행성에서 인간 아이를 낳고 양육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인공지능(AI) 로봇이 있다.
종교 갈등으로 멸망 위기에 처한 22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인류 재건을 위해 외계 행성에 정착한 '마더'와 '파더' 두 AI 로봇 이야기를 그린 HBO맥스 오리지널 공상과학(SF) 스릴러 드라마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속 이야기다.
드라마는 안드로이드, 생명, 모성애 등 여러 주제를 관통한 서사를 풀어낸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AI 로봇이 어떻게 인간 아이를 낳았을까.
답은 바로 '인공자궁' 기술에 있다. 인공자궁 기술은 인간 배아를 체내 자궁이 아닌 체외 기계를 통해 키우는 기술이다. 인공 수정이 정자를 인위적으로 자궁에 착상 시키는 기술이라면 인공자궁은 체내 착상 없이 배아를 키우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미숙아를 키우는 기기 인큐베이터가 있다.
인간의 자궁은 배아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배아 성장에 따라 수축·팽창하며 기능한다. 인공자궁 기술은 이와 비슷한 환경을 구축하며 배아를 실시간 관리할 수 있는 AI 시스템을 활용한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 등장한 인공자궁 또한 AI 로봇인 마더가 직접 실시간 관리한다.
인공자궁은 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다. 2017년 미국 연구팀은 인공자궁을 통해 새끼 양을 성체로 키워냈으며 이스라엘 연구소는 지난해 인간 탯줄을 활용한 튜브에서 쥐 배아를 성장시켰다.
이렇게 발전한 인공자궁 기술은 자궁 손상 등 난임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이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도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 조산 위험에 처한 태아를 인공자궁으로 이동시켜 안전하게 키워낼 수 있고 여성을 출산 고통과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킬 수도 있다.
법적·윤리적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국제 생명연구 윤리법은 2주 이상 성장한 배아를 실험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상용화를 위해 임상실험이 필수적인 인공자궁 기술은 발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윤리적으로는 인공자궁이 인간 탄생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존엄성을 망친다는 의견도 있다. 존엄성이 없는 기계로부터 인간이 태어나면 사회적으로 생명 경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 등장하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종교 집단 '미트라교'도 로봇이 인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인간 존엄성에 반한다며 AI 로봇 마더와 갈등한다. 인간과 안드로이드 로봇 대립이자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대립을 나타내는 서사다.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와 '블레이드 러너' 등 SF 장르 개척자이자 뛰어난 스토리텔러인 리들리 스콧 감독 연출로 인공자궁 기술로부터 시작된 방대한 SF 세계관을 그린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시즌 1·2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박종진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