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44일만에 사임을 발표한 일을 두고 영국의 한 매체가 “양상추의 싱싱함이 더 오래갔다”며 풍자했다.
영국 매체 데일리스타는 ‘트러스 총리가 상추보다 오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지난 14일 유튜브에서 생중계를 시작했다. 트러스 총리와 닮은 금발 단발의 가발을 얹은 양상추와 시계를 비추는 영상이다.
이는 지난 11일 영국의 권위 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에서 시작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임기 초부터 시작된 정치적 붕괴와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10일의 애도 기간 사이 트러스 총리의 실질적인 권력 장악이 고작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거의 상추의 유통기한(roughly the shelf-life of a lettuce)’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이 14일 데일리스타의 다른 생중계에서도 나오면서 양상추와 트러스 총리의 ‘버티기’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대결은 20일(현지시간) 트러스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면서 양상추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날 트러스 총리는 총리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찰스3세 국왕에게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44일만으로 역대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총리가 됐다. 차기 보수당 대표 및 총리는 이르면 24일 결정된다.
트러스 총리는 보수당의 상징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추앙하며 '철의 여인'을 꿈꿨으나 금세 '좀비 총리'로 불리는 처지가 됐다. 일각에서는 손을 대면 일을 망친다는 '인간 수류탄'이란 별명대로 자신을 폭파했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특히 새 내각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성급히 내놓은 감세안이 트러스 총리를 넘어뜨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9월 23일 450억파운드(약 72조원) 규모 감세안이 포함된 미니 예산을 사전 교감이나 재정 전망 없이 던지자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역대 최저로 추락하고, 국채 금리는 급등했다.
감세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던 트러스 총리는 이후 계속된 여론 악화에 부자 감세, 법인세율 동결 등을 차례로 뒤집고 자신의 정치적 동지인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내쳤다. 이어 새로 온 헌트 재무장관은 트러스 총리의 경제정책을 사실상 폐기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금융시장은 안정됐지만 트러스 총리는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한편 트러스 총리 사임이 발표된 후 금융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파운드화 환율은 트러스 총리 사임설이 퍼지면서 1.13달러까지 올랐다가 장 후반 상승폭이 축소되며 전날보다 0.45% 오른 1.127달러로 마감됐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