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낮은데 업무는 많아
리스크 탓 '수탁 회피' 만연
투자자 모으고도 결성 난항
"공공 영역서 해법 찾아야"
초기 스타트업을 투자·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AC)와 중소형 벤처캐피탈(VC)이 어렵사리 투자자(LP)를 모으고도 수탁기관을 구하지 못해 벤처펀드(벤처투자조합) 결성에 애를 먹고 있다. 현행법상 20억원 이상의 벤처펀드는 수탁사 없이 결성할 수 없는데, 수탁사가 소규모 펀드 수탁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AC를 비롯한 중소형 VC가 펀드를 맡아 줄 수탁사를 찾을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한 AC 관계자는 “투자자를 모으는 것보다도 수탁사를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라고 말했으며, 50억원 이하 펀드와 실적(트랙레코드)이 없는 중소형사일수록 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벤처펀드 결성 현황에 따르면, AC 결성 펀드는 지난해 총 41개이며, 평균 금액은 93억원이다. 올해 상반기 AC가 결성한 벤처펀드는 21개로, 평균 금액은 79억원이다.
평균이 최소 결성 금액(20억원)보다 4배 많은 것으로, 이는 AC가 수탁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탁사가 맡기로 한 펀드 대부분은 50억원 이상의 규모 큰 펀드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 들어 '100억원 이상 규모로 펀드를 만들어 와야 수탁해줄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수탁사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소형사일수록 더 곤욕을 치른다. 수탁사가 리스크 부담을 이유로 신규 펀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한 중소형 VC 관계자는 “트랙 레코드 부재로 수탁사를 구하기 힘들어 독자 펀드 결성은 보류한 상태”라면서 “수탁이 필요 없는 규모(20억원 이하)로 펀드를 쪼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펀드 수탁사들이 소규모 펀드를 외면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라임·옵티머스펀드 사태 이후 수탁사 의무가 강화되고 업무량이 늘어난 데다 리스크 부담이 큰 데 대규모 펀드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져서다. 수탁사마다 수탁받는 최소 금액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탁 업무의 낮은 수익성과 리스크 부담으로 중소형사의 펀드 결성 난항이 악순환처럼 이어지자 민간이 아닌 공공 영역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관인 기술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을 수탁전문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하나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수탁사가 펀드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리스크 부담과 과도한 업무량에 있다”면서 “수수료 인상 등 수익성 개선은 해법이 될 수 없고, 리스크를 완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C협회 관계자는 “벤처붐을 타고 벤처펀드는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맡아줄 수탁사는 한정돼 있어 업무는 가중되고 투자 비즈니스 기본인 펀드 결성이 막히고 있다”면서 “중기부 산하 공공기관을 수탁전문기관으로 지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개선책”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수탁사 업무 부하를 줄이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방침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기보, 중진공 등이 수탁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벤처투자법) 개정을 검토하겠다”면서 “벤처투자업계, 수탁사와 함께 수탁업무 메뉴얼을 수립하는 등 수탁사가 호소하는 '과도한 업무량'을 해소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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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러레이터는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2020년 8월 12일) 이후 벤처투자조합 결성이 가능해짐.
(출처 :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