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 제재 명단에 오른 러시아 기업들이 아시아 허브인 홍콩으로 사업지를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1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로펌이 러시아 기업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으며, 일부는 홍콩으로 자본 조달에 대해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로펌인 ONC로이어스의 매니징 파트너 셔먼 얀 변호사는 “러시아 국영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주요 기업이 뉴욕이나 런던보다 더 '우호적인 관할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홍콩 로펌과 협력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사업을 홍콩으로 이전하려는 러시아 기업의 관심이 이전보다 확실히 고조됐다”며 “일부는 러시아에서의 영업을 유지하는 한편, 홍콩으로 등록 서류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세한 기업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국유기업, 유통업과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매업체 등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얀 변호사는 “제재 반대와 자금 세탁 위험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소속 변호사들이 해당 기업의 의뢰를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0개월 간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중국 정부는 여전히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어 홍콩이 러시아 기업들의 외부 자본 창구가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서방 해역에 정박한 러시아 기업들의 요트는 속속 압류되고 있지만 홍콩에 정박한 요트는 홍콩 당국이 압류를 거부한 것이 일례다.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 알렉세이 모르다쇼프 소유의 5억 달러(약 7천억원) 상당 호화 요트 '노르'(Nord)가 수일 전 홍콩 빅토리아항에 입항한 것과 관련, 서방의 제재 대상임을 내세워 압류할 것을 요구했으나 홍콩당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요트의 소유주인 모르다쇼프는 러시아 철강업체 세베르스탈의 대주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등의 제재대상에 올랐다.
다만 2차 제재 위협을 감안하면 홍콩 은행과 감사들이 러시아 기업들의 요청에 응할지는 미지수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지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중국의 은행들조차 자유 탄압을 이유로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인사들과 거래를 꺼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0일(현지 시간) 성명을 내고 "다수 사법관할권으로부터의 제재를 회피하려는 개인에 의해 홍콩이 도피처로 이용된다면 홍콩의 사업환경 투명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홍콩의 자치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중국의 억압적인 행동을 고려했을 때 홍콩 비즈니스 환경을 경계하는 미국 기업들의 시각이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홍콩의 중앙은행 격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별도 제재 목록이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월, 리스크에 관한 평가는 은행들에 달려있다고 일축한 바 있다.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러시아 재벌과 기업은 홍콩 외에도 다른 사업지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두바이에서는 러시아 업체들이 앞다퉈 사업을 시작했으며, 러시아 일부 기업과 정부 역시 달러 사용을 중국 위안화로 대체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일(현지시간) 중국 위안화가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달러를 제치고 거래액과 거래량 1위 외화에 올랐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