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선설비 미보유 기간통신사업자 570곳 돌파의 의미
스마트폰 혁명 초기 폭발 성장…2019년 등록제 전환으로 탄력
통신사 거치지 않고 데이터 수집, 응용서비스 독자 상용화 길 열려
인프라 '공짜 활용' 경계 목소리…정당한 '망 사용대가' 정착 필요
회선설비 미보유 기간통신사업자 등록 건수가 8월 574개를 돌파한 것은 자동차, 에너지, 보안, 항공 등 타 산업이 통신서비스를 적극 융합하려 한 결과다. 통신 인프라가 다른 산업을 혁신하고, 가치를 높이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방증이다.
지속적인 통신 융합서비스 활성화는 물론, 인프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을 수 있도록하는 정책 방안이 요구된다.
◇회선설비미보유 기간통신사업자 570개 돌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회선설비 보유 기간통신사는 76개, 회선설비 미보유 기간통신사는 574개로 집계됐다. 회선설비 미보유 기간통신사는 주요 교환설비 등을 설치하지 않고서도 기간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설비 또는 서비스 일부를 구매하거나 빌려서 이를 다시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사업자다. 통신 인프라를 응용해 필요한 서비스를 창출, 혁신 가치를 더해 이용자에 서비스한다.
과거 회선설비 미보유 기간통신사업은 '별정통신'으로 통칭했다. 과기정통부는 2019년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며 통신서비스 진입규제를 등록제로 전면 전환하면서 기간통신과 별정통신 역무 구분을 없애 기간통신으로 통합했다. 즉, 이용자에게 데이터를 전송하는 서비스를 모두 동일한 서비스로 보고, 행정적 구분만 '회선설비 보유'와 '회선설비 미보유'로 남겨놓은 것이다.
통신 융합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기간통신사업 등록 요건이 완화·투명화되자, 기간통신사업에 진출하는 사업자가 확대됐다. 회선설비 미보유 기간통신사업자는 1998년 제도 도입 당시 13개에서 출발해 2005년 94개, 스마트폰 혁명 초기인 2010년 196개로 증가했다. 2015년에는 324개, 2020년말 493개에 이어 2022년 8월 574개로, 신규사업자 증가 속도가 가팔라졌다.
◇통신 넘어 융합서비스로 확장
기간통신서비스는 2010년 이전까지는 통신 인프라를 재판매 의미를 담은 용어인 '별정' 통신 위주로 인식됐다. 삼성SDS, 포스코ICT 등 시스템통합(SI) 기업은 기업 구내 통신망을 구축하면서 서비스를 관리하고 유지보수를 위해 별정통신 사업(회선설비 미보유 기간통신) 자격을 획득했다.
이후 2012년 옛 미래창조과학부가 알뜰폰 활성화 정책을 펼치면서 기간통신사업은 세종텔레콤, 한국케이블텔레콤, 스테이지파이브, SK텔링크, KT엠모바일, 미디어로그, 머천드코리아, 아이즈비전 등 알뜰폰서비스가 시장에 진입하는 통로가 됐다.
스마트폰 활성화와 기가인터넷 보급 등 통신 인프라가 확장되면서 통신을 응용하려는 다양한 산업군이 기간통신사업자로 등록했다. 자동차 산업계에서는 현대자동차, 기아, 쌍용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BMW, 르노코리아, 포르쉐코리아 등이 기간통신사업자로 등록했다. 내비게이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롱텀에벌루션(LTE) 통신망 연결은 필수 기능이 됐다.
금융권에서는 알뜰폰을 영위하는 국민은행과, 모바일결제 전문기업인 KG모빌리언스 등이 기간통신사업에 진출했다. 에너지분야에서는 한전KDN, LG에너지솔루션, 보안 분야에서는 에스원, SK쉴더스, KT텔레캅 등이 회선설비 미보유 기간통신 사업 자격을 얻었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롯데렌탈, 교원, AJ네트웍스, 스마트스코어 등 국민에게 친숙한 서비스가 기간통신사업자 제도를 활용해 통신서비스를 융합·활용한다. 기업은 회선설비미보유 기간통신 제도를 통해,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서도 자체 데이터 수집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 융합서비스를 진화시킬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통신 융합·인프라 가치 제고해야
회선설비 미보유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제를 통해 기업은 정해진 3억원 이상 자본금 요건 등 등록요건을 충족하면, 자유롭게 통신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통신을 본업과 관계없이 부수적으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등록 없이 신고만으로 사용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하기도 했다.
통신인프라 활용도를 높여 타산업에 혁신의 물길을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후에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공장, 스마트물류 등 다양한 혁신 산업 분야의 기간통신사 진출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전문가는 융합서비스 활성화의 촉매 역할을 하는 통신인프라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한다. 통신인프라는 각종 편의 기능은 물론이고 자동차가 통신망을 활용하는 비상신고 기능, 자율주행자동차와 UAM의 항로 제어 등 국민 안전과 직결된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촘촘하고 빠른 통신망이 있어 세계 어느나라보다 혁신서비스를 상용화하기 우수한 조건이다.
하지만, 세계최고인 한국의 통신인프라가 망을 '공짜'로 사용하겠다는 구글,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여론전에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국회의원도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통신인프라 융합 확산을 위한 정책 수립과정에서 인프라가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업이 회선설비를 보유하지 않고도 통신서비스를 자유롭게 제공할 수 있도록한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제 성과가 융합서비스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제도를 지속 점검,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