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0주년 특별인터뷰] 시바타 히데토시 르네사스 CEO

작년 이바라키현 공장 화재로 100억엔 이상 피해
우려 딛고 한달 만에 생산설비 재가동 목표 달성
추진력 무기로 '종합 반도체 솔루션 기업'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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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지난해 3월.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의 일본 이바라키현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당시 장기화하기 시작한 반도체 공급난에 따라 완성차 생산 계획에 큰 차질을 빚던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굴지의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 공장이 화마에 휩싸인 것이다.

화재 발생 보고를 받은 시바타 히데토시(柴田英利) 르네사스 대표이사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급히 현장을 찾았다. 생산설비 상태는 처참했다. 일부 현장 직원은 공장을 다시 가동할 수 없을 거라며 체념했다.

그러나 시바타 CEO는 화재로 탄 생산설비를 한 달 내 재가동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이 말을 들은 일부 직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시바타 CEO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르네사스는 한 달 후 생산설비를 다시 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시바타 CEO는 이처럼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를 향해 돌진해 결과를 내는 것을 르네사스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이 같은 추진력을 무기로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기업 체질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르네사스는 지난해 9월 영국 반도체 기업 다이얼로그 세미컨덕터를 인수합병(M&A)하면서 약점으로 꼽힌 전력·전력관리반도체(PMIC) 포트폴리오를 보완했다. 이후 이스라엘 와이파이 반도체 업체 셀레노, 미국 임베디드 인공지능(AI) 솔루션 업체 리얼리티 애널리틱스, 인도 팹리스 스테라디안을 잇달아 인수하며 광폭 행보에 나섰다.

창간 40주년을 맞이한 전자신문은 최근 방한한 시바타 CEO를 르네사스 판교 오피스에서 만났다. 르네사스를 '종합 반도체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데 총력을 쏟는 그의 경영 철학과 통찰력을 들어 봤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코로나19 이후 각국 지사 직원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한국 지사 직원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때마침 중요 해외 고객사로부터 방한 요청도 있었다. 그동안 몇 차례 한국에 왔지만 르네사스 CEO로 찾은 것은 처음이다. 과거와 비교해 서울에 레지던스 등 입체감 있는 건물이 상당히 많아져 놀랐다.

-한국은 르네사스에 어떤 시장인가.

▲한국은 당연히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애초에 한국 자동차 제조사는 르네사스의 중요 고객이다. 르네사스는 지난 2019년 IDT를 인수하면서 '메모리 인터페이스'를 제조하게 됐다. 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는 꼭 필요한 부품이다. 앞으로도 이들과 윈-윈 관계를 도모할 계획이다. 다만 르네사스는 그동안 한국의 몇몇 대기업에 의존해 비즈니스를 추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한국 기업과 협력해 다양한 비즈니스를 키우고 싶다.

-이바라키현 공장 화재 피해가 심각했다.

▲피해 추산액만 100억엔(약 993억원)을 웃돌았다. 현재는 모두 복구했다. 화재 감지를 위한 초감도센서 등을 설치하는 등 대비책도 마련했다. 하지만 화재 대비는 돈이나 설비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현장 근무자가 화재 발생 가능성에 주의를 조금 더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화재 발생 후 1년여가 지났는데 현재 세계 각국 생산 거점을 대상으로 안전 관련 경진대회를 진행 중이다. 공장별로 안전 관련 사항을 평가, 우수한 성적을 낸 곳에 시상할 계획이다.

-르네사스는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 강자다. 가장 경쟁력 있는 무기는.

▲'솔루션'을 꼽을 수 있다. 르네사스는 기술력과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해 그동안 인터실(2017년), IDT(2019년), 다이얼로그(2021년)와 대형 M&A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세계 최상위 점유율을 확보한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은 물론 주변에 탑재하는 아날로그 반도체 라인업을 확충했다. 또 이들과 파워반도체 등 르네사스 제품을 조합한 '위닝 콤비네이션'이라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르네사스처럼 폭넓은 제품 라인업을 소프트웨어(SW) 및 개발환경과 함께 제공하는 반도체 기업은 세계에 드물다. 고객은 이 같은 솔루션으로 제품을 하나하나 조합하는 방식보다 설계·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것이 르네사스가 지닌 큰 무기다.

-그동안 굵직한 M&A를 다수 추진했는데.

▲르네사스 M&A는 피인수 기업이 우리의 '목적(Purpose)'에 부합하는지, 친화성이 있는지 판단하는 데부터 시작한다. 즉, 'To Make Our Lives Easier'(우리 삶을 더 쉽게)라는 것이 M&A 전략의 근간이다. 전력 관리, 연결성 등 우리가 갖지 못한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발상을 얻기 위한 M&A를 추진했다. 르네사스의 부족한 기술과 능력을 보완하기 위한 '볼트온(Bolt-on)' 형태 인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근 인수한 셀레노, 리얼리티AI, 스테라디안 등이 대표 사례다. 앞으로 1~2년 내 계획이 바뀔 수도 있지만 다음 M&A 대상은 넒은 범위에서 SW 관련 기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심각하다.

▲반도체 산업 전체를 보면 공급난을 대체로 해소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극히 일부 지점에 많은 수요가 몰리면서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전기자동차(EV)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구조적으로 1대당 반도체 탑재량과 비용은 증가할 것이다. 르네사스는 이 같은 중·장기적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비해 공급능력 확대·안정화를 추진 중이다. 올 상반기 지난 2014년 폐쇄한 일본 야마나시현 공장에 900억엔(약 8935억원)을 투입, 전기차용 반도체 300㎜ 생산라인을 재개했다. 파운드리, 패키징 외주업체(OSAT), 재료 협력사와 장기적·안정적 관계를 구축하면서 외부 생산 능력도 확보했다. 또 전공정 가공을 끝낸 웨이퍼 상태로 제품 재고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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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최근 파운드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 전략은 무엇인가.

▲르네사스는 현재 '팹 라이트' 전략을 추진 중이다. 모든 생산을 자사에서 소화하는 'IDM'이나 공장이 없는 '팹리스'와 구별되는 형태다. 자체 생산과 아웃소싱으로 균형을 맞추는 게 핵심이다. 첨단 노드 생산에는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파운드리에 외주를 주는 형태로 설비투자액을 절감하고 있다. 또 급격하게 수요가 변동하는 제품은 아웃소싱으로 생산 규모를 신속히 조절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파운드리, OSAT와 협력 관계를 다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수요가 많은 레거시 노드나 전력 반도체는 자체 생산하면서 안정적 공급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인재 양성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인력 확보 전략은 무엇인가.

▲'르네사스에서 일하면 성장할 수 있다' '르네사스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재가 오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그들을 찾아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또 각 팀, 개인 사정에 맞춰 근무 체계를 조정하도록 한다. 인재들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포인트다.

르네사스는 글로벌시장을 무대로 사업을 한다. 필수적으로 각국에서 우수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최근 처음으로 '최고인력책임자(CHRO)'를 선정했다. 과거에는 일본 내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을 데려오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 지사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자유로운 근무 구조가 르네사스를 글로벌화할 수 있다고 본다.

-미·중 갈등이 반도체 공급망을 흔들고 있다. 르네사스의 대응책을 알려달라.

▲르네사스는 M&A로 개발 거점과 인재를 각국에 균형있게 배치하게 됐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확립했다. 특히 영국 다이얼로그를 인수하면서 유럽 연구개발(R&D) 거점을 확보하게 됐다. 이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닌 제3국에서 신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미·중 대립으로 대표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전체 매출 10%가량을 차지하는 미국에도 M&A에 따른 현지 거점을 확보했다. 앞으로 미국 '반도체법' 등 동향을 주의 깊게 지켜볼 계획이다. 다만 미국에 새로운 생산거점을 구축할 계획은 없다.

-르네사스의 최종 지향점은 무엇인가.

▲고객사가 가장 마지막 설계 단계에 반도체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통상 전자산업은 설계 단계에서 가장 먼저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를 결정한다. 반도체 제조사에서 시제품을 받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해 다른 부품들을 선정한다. 그러나 제품 개발 종료 시점에서 보면 가장 먼저 결정된 반도체는 가장 오래된 부품이다. 현재 차량에 탑재된 반도체를 보면 아무리 빨라도 5년 전에 개발된 제품이 대부분이다. 르네사스는 실제 반도체가 없어도 제품을 설계할 수 있는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PC, 자동차 등에 '진정한 최신 반도체'를 탑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제품의 고성능화로 이어져 사용자에게 한층 다양하고 고도화한 기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르네사스가 SW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는 이유다.

○시바타 히데토시 르네사스 CEO는…

시바타 히데토시 르네사스 CEO는 1995년 일본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했다. 같은 해 도카이여객철도(JR 도카이)에 입사해 수익 향상을 위한 소프트웨어(SW) 개발 등을 담당했다. 1999년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유학길에 올라 2년 후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메릴린치 일본증권, 일본산업혁신기구를 거쳐 2013년 11월 르네사스 상무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올랐다. 일본산업혁신기구 근무 당시 투자사업 그룹 매니징 디렉터였던 그는 당시 경영 위기에 흔들렸던 르네사스의 구조조정에 참여했다. 르네사스 CFO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비수익 사업을 처분하면서 흑자 전환에 공헌했다. 2019년 7월 대표이사 사장 겸 CEO에 취임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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