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한류의 '따뜻한 전략'

2004년 4월 3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 일본인 여성 수천명이 모였다. 팬미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입국하는 '겨울연가'의 주인공 '욘사마'(ヨン樣) 배용준을 기다리는 군중이었다. 이날 경찰 추산 5000여명이 몰리면서 공항과 인근 지역이 공황에 빠지는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일본에서 1세대 한류가 본격화한 순간이다.

2003년 일본에서 방영된 '겨울연가'는 당시 현지 중년 여성 시청자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30~50대 일본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욘사마의 외모와 연기력, 한국 드라마 특유의 스토리가 제대로 먹혔다. 일본 제일생명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겨울연가'는 2004년 한 해에만 한국과 일본 양국에 총 2300억엔(약 2조2540억원)에 이르는 경제효과를 가져왔다.

'겨울연가'가 불을 지핀 일본 속 한류는 2010년대 들어 시들했다. 독도 영유권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한류 콘텐츠를 바라보는 일본 내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 시장에 도전한 연예 기획사와 아티스트가 '뜨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한류는 2010년 후반 들어와 다시 일본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한국의 탄탄한 아티스트 육성 체계와 수준 높은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덕이다.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보이며 직접 경험하려는 이도 늘었다.

Photo Image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의 주요 도시 번화가와 선술집에는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 블랭핑크 등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10~20대는 도쿄 코리안타운 신오쿠보에서 한국산 화장품을 구매하고 한국식 핫도그를 즐긴다. 치맥(치킨+맥주)이나 삼소(삼겹살+소주)를 찾는 이도 많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일본에서 젊은 층 중심으로 한국산 소주 구매량이 폭증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젊은이들이 '사랑의 불시착' '나의 아저씨' 등 한국 드라마를 접하면서 주요 장면에 등장하는 한국산 소주를 구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콘텐츠가 끌어올린 한국의 이미지 수혜를 소주, 화장품 등 한국산 제품이 받고 있다”면서 “따뜻한 전략”이라고 호평했다.

한류 콘텐츠는 일본의 젊은 층을 파고들며 식음료, 뷰티, 패션 등 다양한 대일 수출길을 개척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 동안 크게 악화한 양국관계가 거대한 장애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장기화하는 세계적 인플레이션도 한류 확산과 한국산 제품 소비를 방해하는 암초다. 한국 미디어·제조 기업이 주마가편의 마음가짐으로 한층 철저하게 '따뜻한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도 절실하다. 일본을 휘감은 한류 열풍이 앞으로도 계속 불기를 기대한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