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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패권 시대에 돌입하면서 지식재산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가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고 다양한 육성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반도체 등 미래를 책임질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집중 육성방안을 내놨다. 기술경쟁 시대 기업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재산권 확보다. 같은 분야에서 많은 기업의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보니 자칫 중복될 가능성이 높다. 빠른 지식재산권 확보를 통해 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특허청이 정부 신기술 육성 정책과 기업의 기술개발 활동에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반도체 분야 우선심사 등 정책을 추진한다. 반도체 분야 퇴직 인력 전문심사관 채용 등을 통해 기술 유출을 방지하고 심사 역량도 강화할 계획이다. 특허 빅데이터를 분석해 산업전략 수립 지원도 나선다. 이인실 특허청장으로부터 앞으로 추진해 나갈 지식재산 정책과 미래 첨단기술 산업 육성 지원 전략 등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정동수 전국총괄 부국장

-첫 민간 전문가 청장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73년 만에 민간 전문가로 특허청장에 취임했다. 주목해 주시는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새 정부에 대한 국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특허청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심사, 심판이다. 국민의 재산권인 특허를 제대로 등록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심사관의 역할과 심사 품질이 중요하다. 심사·심판관이 역량을 다해 정확한 심사·심판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저의 몫이라 생각한다. 첨단기술 분야 퇴직 인력을 심사관으로 활용해 심사의 질을 높이고 우수인력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겠다. 산업계의 숙원인 특허 침해소송에 변호사, 변리사가 대응할 수 있는 공동소송 제도도 정착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우리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특허 전문가의 해외 파견도 확대해 나가겠다. 다양한 특허청의 활동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국가 간 기술패권 시대 반도체 산업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분야 지원을 위한 계획은.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가 화두다. 치열한 기술경쟁 시대에 기업엔 빠른 특허권 확보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 분야의 우선심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렇게 할 경우 12.7개월 정도 걸리는 반도체 분야 특허심사가 2.5개월로 대폭 단축될 전망이다. 또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 경쟁력 확보 일환으로 민간 퇴직 인력을 특허심사관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첨단기술 분야 퇴직 인력은 기술 이해도가 높아 심사업무에 투입 가능한 훌륭한 인재다. 퇴직 인력의 심사관 활용은 핵심 인력 해외 유출 방지, 첨단기술의 신속·정확한 권리화 등 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주요 반도체 기업의 기술경쟁 동향을 파악하고 우리가 집중해야 할 기술을 선별하기 위해 반도체 분야 특허 빅데이터 분석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핵심기술 해외 유출 방지를 위해 반도체 등 퇴직 기술전문가 활용방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반도체 등 핵심기술 분야 한국 인력은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인력 빼가기 표적이 되고 있다. 향후 고경력 기술전문가 대량 퇴직이 예상돼 핵심기술 분야 한국 인력 유출 우려가 심화하는 상황이다. 인력 유출이 곧 기술 유출의 원인이며 일본 반도체 산업과 같이 '인력 유출→산업붕괴' 전철을 피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퇴직 기술전문가들이 국내 적재적소에 정착되는 환경이 마련돼야 하며 특허청 전문심사관이 최적화된 일자리로 볼 수 있다. 퇴직 인력은 기술전문가로 특허심사관에 적격하며 기술 유출 방지와 신속·정확한 심사라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심사 효율화 방안은.

▲AI 기술을 심사관의 선행기술·도형상표 검색, 특허분류, 번역 등에 활용하며 심사업무의 효율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AI 도형상표·디자인 검색서비스는 심사관에게 빠르게 검색 결과를 제공해 심사업무를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시스템도 전 세계 특허청 중 최고 수준으로 심사관의 만족도와 신뢰도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도 기능개선, 학습데이터 구축을 통해 AI 기술을 고도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 중·장기적으로 민간(기업)과 협력해 AI 기술을 활용한 심사 서비스를 확대, 심사처리 기간 단축 및 심사 품질을 높여나가겠다.

-우리 기업을 위해 구상하고 있는 정책이 있다면.

▲기업이 지식재산권(IP)을 통해 사업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올해 IP 금융 규모를 7조5000억원(2021년 6조원)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직무발명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직원의 기술개발 의욕을 고취하는 노력도 함께할 것이다. 지식재산 관련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수수료도 자세히 살펴 혁신기업의 부담이 경감될 수 있도록 하겠다.

-지식재산 가치평가 신뢰를 높이는 방안과 앞으로 계획은.

▲지식재산 금융 활성화를 위해선 IP 가치가 제대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IP 금융이 혁신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자리 잡으려면 가치평가의 신뢰성 제고가 필수다. 지식재산 평가관리센터를 설치해 IP 가치평가 신뢰도를 높여 나갈 계획이다. 평가정보시스템 구축 등 IP 가치평가의 부실 평가 방지·적발 기능도 강화해 나가겠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총회 기간 중 싱가포르, 칠레 등 국가가 한국의 IP 금융 제도, IP 가치평가 시스템에 관심을 보였다. 앞으로 외국과 가치평가 지원사업 등 지식재산 금융 정책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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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특허청장이 정동수 전자신문 전국총괄국장에게 지식재산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근 WIPO 총회가 3년 만에 대면 회의로 개최됐다. 대면 회의 의미 및 총회 기조연설에서 강조한 부분은.

▲전 세계 지재권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식재산 분야 공동 협력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고 양자 간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기조연설에서는 팬데믹, 디지털 전환, 미·중·러 패권 경쟁 등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혁신의 중요성과 이를 촉진하기 위한 지재권 제도의 개선을 강조했다. 지난 2년간 디지털 분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한국의 노력으로 영상디자인, 데이터 및 유명인의 초상 등에 관한 보호를 강화한 사실을 소개했다. 한국이 WIPO에 출자한 한국신탁기금으로 수행되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들을 소개하며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지재권 격차 해소를 위한 우리나라의 노력도 홍보했다.

-WIPO 총회 출장 기간에 양자 회담 성과와 앞으로 국제협력 추진 방향은.

▲12개국 특허청과 회담을 개최했고 5건의 지식재산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영국, 캐나다, 몽골, 칠레 특허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지재권 보호, 인력 양성, 데이터 교환, 특허·상표 심사 등 협력 범위를 넓혔다. 프랑스와는 특허심사하이웨이(PPH) 업무협약을 체결해 양국의 특허출원인이 상대국가에서 신속하게 특허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는 11월엔 아세안 10개국 특허청장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한-아세안 특허청장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아세안 국가들의 지식재산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한국 특허청의 종합적인 지원 계획을 제안할 것이다. 한국의 경험을 아세안 등 신흥국에 전수해 개도국과 동반성장을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올해 IP5 청장 회의도 진행했다. 의미와 주요 성과는.

▲올해 IP5 회의는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협력을 시작하기로 한 의미 있는 회의였다. 기후변화, 사회적 불평등 등 인류가 당면한 문제에 지식재산이 기여할 방안을 고민하고 협력하기로 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지식재산 격차 해소를 위한 IP5의 노력을 제안했고 지속해서 논의하기로 했다. 올해는 산업계가 IP5에 참여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산업계 요구에 따라 심사 진행정보 통합조회서비스(OPD) 개통, 첨단기술·AI 협력 로드맵 수립 등 성과를 거뒀다. 또 AI 발명 심사 관행을 조화해 나가기 위해 각 청 AI 발명에 대한 심사사례를 공유·비교하기로 협력했다.

-특허 소송 공동대리 이슈에 대해 변호사-변리사 시선이 아닌 우리 기업에 변리사 공동대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면.

▲특허 침해소송 시 기업의 최대 애로사항은 변리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자사 특허 출원부터 심판·심결 취소소송까지 대리해온 변리사를 침해소송에서도 활용하길 희망한다. 변호사의 기술·특허 전문성 부족으로 법률소비자는 변리사를 보유한 대형로펌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나 고액의 수임료로 대다수 중소·벤처기업은 소송을 포기한다. 공동대리제도 도입 시 변리사, 중소로펌 변호사를 합리적 비용으로 선임 가능해 기업부담이 감소한다. 특허 소송의 대형로펌 독과점이 해소돼 중소로펌, 청년 변호사도 변리사와 함께 특허 소송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과 영국, 유럽 등 주요국도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인정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EU 17개국이 참여하는 유럽통합특허법원도 기업 소송부담 완화를 위해 변리사 소송대리를 허용한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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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특허청장은


부산대 불어불문학과와 프랑스 로베슈맹법과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이화여대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 법학 석사와 고려대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의 세 번째 여성 변리사로 시작해 한국여성변리사회장, 국제변리사연맹 한국협회장,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한국여성발명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30여년 이상 지식재산권 분야에 종사한 전문가로 여겨진다. 이 청장은 73년 만의 첫 여성 민간 출신 특허청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취임 후 첫 약속은 과학기술을 활용한 지식재산 행정과 심사·심판 전문성 강화다.


정리=양승민기자 sm104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