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비상대책'이 필요한 비대위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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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어릴 적 일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김응룡 전 프로야구 감독의 성대모사가 유행하곤 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 감독이던 김 전 감독의 푸념이었다. 당시 김 감독은 투타 에이스인 선동열과 이종범을 일본으로 보낸 뒤였다. 푸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었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 국민 역시 '무언가'가 없다.

여당과 야당, 대안을 표방하는 제3당에는 모두 당대표가 없다. 그 대신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이미 꾸렸거나 이를 준비하고 있다. 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선거 패배 이후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의힘도 조만간 비대위 체제로 들어간다. 선거에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데 공교롭게도 여당과 거대 야당, 대안 정당 모두 비상대책이 필요하단다. 승자와 패자가 모두 '비상'이다.

그 사이 민생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치인이 내뱉는 언어에서도 매일 경고음이 나온다. 이들은 매일 열리는 아침 회의에서 '위기'를 외친다. 고유가·고물가·고금리라는 3고에 경제가 휘청대고 민생이 위협받고 있다는 말도 매번 들린다. 그러나 해결책이라 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후반기 원 구성에는 53일이 걸렸다. 원 구성 이후에는 민생에 책임있는 역할을 할 여당이 당내 갈등에 휩싸여서 시끄럽다. 결국 여당도 비대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당헌·당규를 바꾸고, 체제 정비에 들어갔다.

국회는 지난 2일 개별소비세법 개정안과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 소득세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국회 내에서는 민생경제대책특별위원회(민생특위)의 성과, 여야 합의 등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가장 큰 논란은 유류세 인하다. 이 정책은 정유사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2일 본회의 당시 반대토론을 통해 “유류세 인하 금액은 가격의 40% 정도밖에 반영되지 않는다. 휘발유 세금을 182원 깎아 줬는데 소비자 가격은 69원만 떨어졌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용 의원은 “유류세 인하의 수혜를 정유사가 왕창 가져가고 있다. 마진이 세금 인하 전보다 일곱 배 폭등, 상반기 영업이익 10조원의 대박을 터뜨렸다”고 지적했다. 유류세 인하의 수혜를 국민이 아닌 정유사가 누린다는 의미다.

민생 없이 비상대책만 외치던 정당들은 이제 당권 다툼에 더욱더 몰입할 것이다. 일찌감치 비대위를 꾸린 제1야당은 이달 초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당권 레이스를 시작했다. 정권에 무한 책임이 있는 여당은 “비상한 상황”이라며 비대위를 꾸릴 예정으로 있다. 그리고 비대위의 끝은 결국 또 당권 경쟁이다. 공천권이 걸린 당권 경쟁인 까닭에 갈등도 격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국민에겐 여전히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다. 당권 다툼을 하는 사이 민생과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탓이다. 대통령 선거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반기 국회 돌입, 지방선거 등을 거치며 국민은 희망을 노래했다. 희망가가 지금 한숨으로 바뀌고 있다.


최기창기자 mobydi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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