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규제개혁은 핵심 국정과제였다. 1998년 행정규제기본법 제정이후 규제완화, 규제혁신 등 화려한 구호 아래 행정쇄신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등 새로운 추진기구가 등장했다. 규제등록제, 규제영향분석, 규제일몰제, 규제비용관리제, 규제샌드박스 같은 온갖 제도를 도입했지만 초기에는 성과를 보이다가도 결국 유명무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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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

규제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장기간 코로나 여파로 경제가 활력을 잃은 상황에서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도돌이표를 반복한 규제개혁의 좌초는 경제 전반의 생산성 하락, 산업역동성 및 잠재성장률 저하와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잠재성장률이 10년 안에 0%대로 추락할 것이란 OECD 경고는 우리 경제가 퇴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게 한다. 최근 3년 연속 번 돈보다 갚아야 할 이자가 더 많은 한계기업은 상장기업 중 19%에 달한다. 생존의 기로 앞에 선 기업들의 활로 찾기는 온갖 규제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국제 비교 시 우리나라는 법과 규제체제의 효율성이 떨어지며, 이는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우리나라 정부 규제로 인한 기업 부담을 전체 141개국 중 87위(2019년)의 하위권으로 평가했다. 최근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2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우리나라 종합 순위는 전체 63개국 중 27위로 전년보다 4단계나 하락했다. 분야별로는 비즈니스 법령 48위, 노동시장 42위, 정부효율성 36위로 정부와 기업의 효율성이 낮아졌다.

4차 산업혁명기 융·복합 기술혁신에 따라 기업의 생멸이 갈리는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정부는 부처 간 책임을 떠넘기는 칸막이식 행정, 개선한 것처럼 속이는 눈가림식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은 규제는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다.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저해하는 규제는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 등 비효율을 초래하여 국민의 후생(행복) 증가를 저해한다.

전문가들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규제개혁 성과를 내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규제개혁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이 매우 크고, 국민들이 규제개혁의 혜택을 누려본 적이 없어 학습효과도 낮으며, 정부는 대부분 법령에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을 핵심 미션으로 하는 정치·사회적 세력도 미약하다. 이런 상황이 30여년간 계속되어 정치와 관료, 기득권 세력에 의한 진입규제가 고착화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적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와 정부 개입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하다. 노동·교육·연금·공공부문 개혁과 사회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대통령이 강조한 '이권 카르텔 깨기'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규제개혁의 성공은 추진 의지와 지속성에 달려 있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난 이유는 강력한 추진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았던 누리호 위성의 발사 성공은 13여년에 걸친 꾸준한 투자와 도전, 연속성 있는 정책이 이뤄낸 결과이다. 규제개혁도 이러한 일관성과 지속성을 띠고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새 정부는 규제개혁을 위한 새로운 제도와 지속 가능한 추진체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또 의원입법 규제영향분석제를 도입하여 과잉 규제를 방지하고, 공무원의 규제개선 성과 평가 및 보상을 강화하여 공무원의 현장 중심 소통과 적극행정을 확산시켜야 한다. 새 정부가 속도감 있는 규제개혁으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길 기대한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 hjlee@ke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