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과거와 작별은 준비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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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이어 국무회의에서도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반도체 전략을 브리핑하면서 전국에서 반도체 공부를 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국가 산업의 주축이던 반도체가 새삼스럽게 재조명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사회에서 에너지와 반도체는 단순 산업 품목이 아닌 생존 영역으로 진입했다. 특히 반도체는 2021년 전체수출액 6445억달러 가운데 1279억달러로 약 20%를 차지하는 국가 핵심 산업이다. 그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고 적용 분야가 더욱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타 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산업이다.

과학기술패권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도체를 포함한 과학기술이 가장 중요한 의제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중요성을 인식해서 과학기술 중심의 국정 운영을 선포했다. 또한 원자력과 반도체를 비롯해 인공지능(AI), 양자(Quantum), 바이오, 우주항공기술 등 메가테크를 진흥하겠다고 국정과제에 담아 두었다. 이들 기술은 모두 시대를 파괴적으로 바꿀 힘이 있다. 기술 패권 시대에 과학기술 혁신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선진국의 끝자락에 서 있는 국격의 유지는커녕 2류 국가로 도태할 뿐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관심에 비해 정부는 여전히 절실하지 않다. 혁신을 위한 사회적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출산율 꼴찌와 잠재성장률 0% 시대에도 기득권의 몽니가 기술 혁신 시대를 가로막고 있다. 지역 격차, 세대 격차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도 여전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후진적 관성에 따라갈 뿐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한다.

반도체 진흥 논의에서 나온 가장 큰 이슈는 인재 양성이다. 사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른 첨단 분야 역시 인재 수급이 비상이다. 당장 반도체 인력 1만명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지만 AI 분야 인력 역시 부르는 게 값이다. 대학 졸업생을 입도선매할 지경이다. 양자 기술이나 바이오, 항공우주 분야는 인력 수요 조사는커녕 수급 자체도 통계로 잡히기 미미한 수준이지만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이를 해결해야 할 교육 당국은 여전히 미온적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교육부 차관이 수도권 규제를 들먹이며 인재 양성이 어렵다고 항변하지만 그 전에 우리나라 대학이 미래 기술 혁신 사회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구조인지에 대한 자성이 선행돼야 했다.

6·3·3 초·중·고등 교육은 입시에만 올인하고 대학교는 다양한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있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부랴부랴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하지만 지금 반도체학과 정원을 늘려 봐야 졸업생은 5년 후에나 배출된다. 인재의 시장 진입 시기(Time to Market)가 너무 길다. 5년이면 이미 패권 경쟁의 향방이 결정돼 되돌아오기 어려운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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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진단 역시 잘못됐다. 지난 10년 동안 학령인구 감소로 국내 대학 정원을 수 만명이나 줄이는 과정에서도 이공계열 정원은 오히려 증가됐다. 2012년 12만7895명이던 4년제 대학의 이공계열 학생 정원은 지난해에는 12만8648명으로 늘었다. 수도권은 늘었고 비수도권은 감소했다. 수도권 규제 때문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한 교육부의 진단에는 오류가 있다. 이공계에 대한 배려가 있었음에도 대학은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배출하고 있지 못하는 셈이다. 미래를 읽지 못하는 정부가 고등 교육, 특히 과학기술 분야를 통제하고 있으니 시대에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반도체특위를 꾸리고 민주당 주도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결국 계약학과나 특성화대학 설치 정도에 그쳤다. 기존에 이미 해 오던 사업을 명문화한 것에 불과하다. 요란스레 혁신을 호소하지만 관료와 기득권의 벽에 막혀서 핵심적인 사안을 풀어 나가지 못했다. 이런 겉치레를 반복한다면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여전히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목소리를 담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장 불난 호떡집처럼 여러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인의 의견은 여전히 소외돼 있다.

인력 양성과 균형발전, 지역특화 R&D 등에 과학기술인의 요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라고 국정과제를 내놓았으나 논의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번 반도체 국면에서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쿠루트 레빈은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관료주의, 이익단체들의 자기 지대 추구를 넘어 파괴적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반도체 인력 양성 제도 개선은 신호탄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은 대학 자율로 과감하게 넘기고 정부는 산업 규제 혁신에만 몰두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 혁신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yeungshik20@naver.com

◇김영식 의원은…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구미시을)은 영남대를 나와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1대 국회에서 몇 안 되는 전통 과학기술 출신 의원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금오공대 기계공학부 교수, 6대 금오공대 총장을 역임했다. 21대 국회부터 의원 활동을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국가 과학기술 및 ICT, 디지털, 원자력 분야 육성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미래일자리특위, 반도체특위, 탈원전피해특위에 참여하면서 과학기술 기반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최근에는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운영 재개 촉구 100만명 서명 돌파 국민보고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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