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 11년간 담합 오명…피해 구제책은 없었다

공정위 줄패소…'과도한 기업 때리기' 제동
11개 배합사료 사업자 수백억대 과징금 부과
남은 행정소송도 공정위 패소 가능성 커
기업 이미지 훼손…제도 개선 필요 목소리

Photo Image
하림 닭고기처리센터 앞 동상.

하림이 11년 만에 '사료값 담합' 오명을 벗었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배합사료 가격 담합 혐의로 150억원대의 과징금 제재를 받은 팜스코, 하림홀딩스, 제일홀딩스 등 하림 관계사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서다. 사법부는 배합사료 산업구조와 담합 확증 없음을 고려해 하림 측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과징금 제재를 받은 나머지 업체들의 행정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수백억원대 과징금과 훼손된 이미지에 따른 피해가 큰 만큼 제도 개선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하림그룹 관계사인 팜스코, 하림홀딩스, 제일홀딩스를 포함한 11개 배합사료 제조 판매사업자들이 사료 가격을 담합했다는 지난달 26일 공정위의 판단을 뒤집는 내용의 서울고등법원 원심 판결을 15일 최종 확정했다. 공정위가 부당공동행위 혐의로 현장조사에 나선 지 11년 만이다.

공정위는 11개 사료회사 담당자들이 여러 모임에서 가격 인상·인하 폭과 적용 시기 등 협의를 통해 가격 결정에 관한 개괄적인 합의를 했다고 판단했다. 시정명령과 1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사법부는 담합으로 적발된 11개사가 정기 모임을 통해 부당공동행위를 했다는 공정위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를 증명하지 못해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배합사료 시장은 축산업을 매개로 육가공, 유가공, 수산가공업 등 다양한 산업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는다. 대규모 시설이 소요되는 장치산업으로서 진입장벽이 높다. 특히 배합사료는 제조원가에서 원재료 비중이 약 89.99%에 이르며, 전체 원료 사용량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이 같은 특성상 수입원재료에 대한 구매경쟁력은 수익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료사들은 원재료 운임 절감과 가격 경쟁력을 위해 사료 원료를 공동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들 업체의 가격 변동 흐름이 유사한 것은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산에 의존하는 산업구조 특성으로 경쟁 제한성은 없다고 사법부는 판단했다. 공정위가 증거로 제출한 가격변동 그래프는 단순한 계획 가격을 기초로 해서 작성된 것으로, 11개사의 사료 가격 변동을 입증하지 못했다. 공정위가 의뢰한 사료업체 간 가격변동 상관계수를 추정한 경제분석 역시 공동행위 기간과 비담합 기간 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료 업체들은 경쟁 구도를 띠지만 실무자나 임원진 간 정보교류가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이를 두고 공정위는 정보교류를 통한 가격 결정에 대해 합의했다고 봤다. 반면 사법부는 이들 11개사의 정보교류 모임이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담합을 위한 모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판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업계 동향 등 정보를 교환하는 모임이 있었고, 해당 사실만으로 담합에 대한 합의가 있음을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료의 축종별 가격을 결정 또는 변경하려는 묵시적·명시적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따라 공정위는 남은 행정소송들도 잇따라 패소할 공산이 높아졌다. 당시 과징금 처분을 받은 11개사 가운데 절반 이상의 사료업체들은 각자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변화하는 것에 대한 유연한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11년 동안 담합 기업이라는 오명으로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봤음에도 별다른 피해 구제 대책이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