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상무위원회가 구글, 애플,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빅테크' 기업에 보편적 서비스에 필요한 네트워크 투자 비용을 분담하도록 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안정적 기여를 통한 합리적 요금의 인터넷을 만들기 위한 자금 조달법'(Funding Affordable Internet with Reliable Contributions Act)은 인터넷에 대한 '공정(FAIR) 기여법'으로 명명됐다.
공정기여법은 공화당이 발의했지만 민주당도 공감하면서 상임위를 통과시켰고, 상원 본회의를 거쳐 하원 심사와 표결을 앞두고 있다.
공정기여법의 주요 내용은 법률안은 구글, 넷플릭스 등 콘텐츠제공사업자(CP)를 '인터넷 종단 제공사업자'(Internet Edge Provider)로 정의하고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반면에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Internet Service Provider)인 통신사는 둘 이상의 기업 또는 일반이용자를 매개로 해서 서로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타인을 인터넷망에 연결하는 역할을 제공한다. 통신사와 인터넷 종단 제공사업자는 인터넷 생태계에서 지위가 구분된다.
이 같은 규정은 한국에서의 분쟁에도 명확한 준거를 제공한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의 소송에서 오픈커넥트(OCA)라는 통신 인프라를 보유, 통신사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망에서는 지위가 대등한 통신사 간에 빌앤드킵(상호무정산) 거래 관행이 성립하기 때문에 망 이용 대가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공정기여법에 근거할 경우 넷플릭스는 인터넷 망의 종단에 위치한 '기업 이용자'라는 사실이 더욱 투명해진다. 넷플릭스는 자국 법에 근거해 자신이 통신사라는 주장을 더 이상 펼치기 어렵게 된다. 기업 이용자는 통신사로부터 인터넷 연결성을 제공 받으면서 어떤 방식이든 유상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대상이다.
공정기여법은 방대한 데이터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인터넷종단제공사업자의 인프라 투자 책임도 규정했다. 법률안이 통과되면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빅테크 기업의 보편서비스 기금 부과 체계, 분담 절차와 분담액 기준 등을 마련하게 된다. 이전까지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조성은 통신사와 이용자 책임이었다. 법률안 통과 이후에는 인터넷 망을 이용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글로벌CP의 망에 대한 책임이 더욱 명확해지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와 같이 인터넷 생태계에서 CP의 지위와 사회적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미국이 한국의 망 무임승차 방지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아이러니다.
망 무임승차 방지법은 그동안 기간통신사 간에만 적용했던 공정계약 원칙을 부가 통신사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원리가 핵심이다. 미국이 인터넷종단사업자라는 개념을 만들어 인터넷 망 내에서 지위를 명확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망 무임승차 방지법의 또 다른 입법 목적은 국적과 무관하게 CP가 망 이용에 대한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게 해서 인프라 투자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역시 공정기여법의 목적과 유사하다.
글로벌 인터넷 시장의 망 투자 유지를 위한 공정성 확보라는 관점을 처음 제시한 국가는 인터넷 종주국인 미국이다. 대표적으로 인터넷 시장 '물침대' 이론은 미국 법원에서 제시됐다. CP가 망 투자·유지에 공정하게 기여하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비용은 일반이용자 또는 통신사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한국 국회의 고민과 문제의식도 미국 법원·국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미국이 새로운 인터넷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립하기 위한 협력체계 구축 차원에서 망 무임승차 방지법에 대해 한국 정부·국회와 논의했으면 한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