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에너지 산업에서는 큰 변화가 일고 있다. 필자가 거주했던 독일 베를린에서는 매년 에너지 전환 분야의 스타트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가 있었다. 매년 80개국 이상에서 수백개 스타트업이 몰려드는 이 행사는 독일 에너지청의 후원을 받아 수년째 운영되고 있다. 필자가 참여한 2019년에는 블록체인 기반 에너지 거래, 사용자 맞춤형 전기 요금제, 전기차 공유 플랫폼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상을 받았다. 일부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 투자사들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 슬픈 현실이 있다. 이들 유망 에너지 스타트업이 하려는 사업 대부분이 한국에선 독특한 시장 환경과 규제, 데이터 부재의 장벽에 막혀 시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은 에너지 전환을 선도하는 유망 산업 분야 가운데 제조 경쟁력은 이미 세계적이다. 전기차, 태양광 모듈, 풍력 구조물, 배터리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서비스 분야로 시선을 옮겨 보면 어떨까. 제조 경쟁력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에너지 산업은 독과점 구조 아래에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각종 규제에 막혀 새로운 시도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글로벌 환경에서 경쟁하고 있는 대기업은 국내에선 시장은 고사하고 협업이 가능한 회사도 찾지 못해 해외 스타트업 투자로 눈길을 돌리기도 한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에너지 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신사업 육성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에너지 산업이 세계시장과 유리돼 갈라파고스화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에너지 산업은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치 있는 데이터 대부분을 공공이 관리한다. 산업 육성을 위해 공공데이터 공개가 특히 중요한 이유다. 더 많은 공공데이터가 공개된다면 더 많은 스타트업이 등장해서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다. 식스티헤르츠가 지난해 전력거래소와 발전 공기업의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전국의 재생에너지 발전소 대상 발전량 예측 서비스를 만든 것이 대표 사례다.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표방하며 공공데이터 공개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서비스가 더 많이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더욱이 에너지 분야는 아직 불모지다.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의미다. 2016년 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보고서를 보면 디지털 기술 도입이 가장 뒤처진 분야가 바로 에너지 산업이었다.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미디어 산업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미디어 산업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사용자 경험은 놀랄 정도로 향상됐다. 현재 우리는 간단하게 구독료를 내고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 이에 비해 우리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전달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거의 바뀐 것이 없다. 특히 한국이 그렇다.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과 소규모 분산전원 보급 확산은 세계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혁신이 필요하며, 수많은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 가장 주목받는 회사 가운데 하나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 사업이 자동차 사업만큼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에너지 분야 혁신 기업을 중심으로 '한국에너지중소혁신기업협회'가 설립된 것은 좋은 소식이다. 새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기치로 내걸고 에너지 시장 정상화와 공공데이터 공개를 언급한 만큼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서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을 국가적 기회로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 jk.kim@60hz.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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