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은 막 구성 물질 없이 소리만을 이용해 효소반응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였다.
효소는 생체 내 화학반응을 매개하는 촉매로, 물질 대사나 신호 전달 등 신체 내 주요 활동에 관여한다. 이런 효소를 활용한 반응 및 생체 시스템 모방 연구에서는 세포와 같이 지질 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김기문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장(포스텍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기존 통념과 달리 지질 막이 없이 소리만으로 용액 내에 분리된 공간을 생성하고, 이를 활용해 효소반응을 시공간적으로 조절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
세포와 같은 생체 시스템 모방 연구에서 효소반응을 시공간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는 효소를 지질이나 고분자 막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가두는 '구획화' 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막 형성을 위한 물질을 효소와 섞어주고 정제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가격이 비싸고 번거로우며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연구진은 이런 과정 없이 소리를 이용, 용액을 아래위로 흔들어주는 방식으로 '막 없는 구획화'를 구현했다. 이를 활용해 다단계 효소반응을 시공간적으로 조절할 수 있음을 최초로 보였다.
물이 담긴 페트리 접시에 25~90헤르츠 주파수 소리를 틀어주면 이에 상응하는 동심원 물결이 생기는데, 연구진은 이 물결에서 상하로 움직이는 마루와 움직이지 않는 마디가 존재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용액이 마치 가상의 막이 있는 것처럼 물결 마디를 경계로 서로 섞이지 않고 구획화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런 소리를 이용한 새로운 구획화 방법을 포도당 산화효소(glucose oxidase)와 겨자무 과산화효소(horseradish peroxidase)로 구성된 다단계 효소반응 시스템에 적용했다. 그 결과 두 번 효소반응을 거친 최종 생성물이 용액 마루 영역에서만 관찰되며, 또 마디에 의해 서로 분리돼 동심원 색깔 패턴으로 나타남을 확인했다.
이것은 막 구조를 이루는 물질이 없이 소리만을 이용한 구획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며, 다단계 효소반응의 시공간적 조절과 같은 생체 시스템 모방에도 성공랬음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런 소리를 이용한 구획화 방법을 활용해 나노 입자가 용액 내의 특정 영역에서만 성장 또는 배열을 하는 등 응용이나, 패턴된 수화젤을 합성하고 이를 세포 성장에 활용하는 등 이 발견이 다양한 분야에 사용될 수 있음을 보였다.
김기문 단장은 “본 연구는 소리를 이용한 '막 없는 구획화'와 이를 활용한 효소반응의 조절에 대한 것으로, 향후 이 방법이 생체 모방 시스템 연구나 새로운 물질의 합성 등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