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중소기업을 살리는 전기요금 제도

Photo Image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주요 국가 가정용·산업용 전기가격 비교

대선 이후 물가 변동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풀린 통화와 억눌렸던 내부 요인이 분출되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외부 요인까지 겹쳐 물가관리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유,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4%대를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보며, 대통령 당선인은 인수위에 “물가를 포함한 민생 안정 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지시하고 이에 따라 우선 인수위에선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Photo Image

산업통상자원부는 2020년 12월 17일 한국전력공사의 연료비연동제를 골자로 한 원가연계형 전력요금제 개편안을 발표하면서도 탈원전 정책(이후 에너지 전환정책으로 개명)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은 없을 것이다' '당분간이 전기료 인상은 없을 것이다' '정권 내에 전기료 인상은 없을 것이다'라고 무수히 주장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중소기업은 없는 듯하다. 중소기업 특히 제조업의 경우 전기요금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전기요금 추이에 중소기업인의 촉각이 서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제조원가 대비 전력요금이 높은 열처리(26.3%) 등 뿌리기업과 섬유직물(12.2%)의 경우 전기료 부담증가 걱정이 심각하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고객별로 주택용(Residential), 일반용(Public&Service), 교육용(Educational), 산업용(Industrial), 농사용(Agricultural), 가로등(Street-lighting), 심야전력(Midnight power)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일반용, 교육용, 농사용, 가로등은 공공 목적으로 사용되는 전력이므로 별도 가격체계를 적용하는 것이고 실제는 주택용(가정용)과 산업용으로 크게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산업용은 다시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는데 제도상으로 구분되지는 않지만 분석의 편의상 구분해서 살펴보는 것이 유의미한 경우가 많다.

그동안 중소기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행 전기요금체계가 불합리하고 특히 중소기업에 불리하니 어려운 여건을 감안한 제도개선이 필요함을 개진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도 정부와 간담회할 때마다 단골메뉴로 '중소기업 전용 전기요금제도 도입' 등 전기요금제도 개선안을 제시한 바 있다. 중소기업계가 현행 전기요금제도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산업용과 가정용 전기요금의 불합리한 차별이다. 통계를 보면 2011년까지는 가정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이 같이 상승하다가 2011년 이후 가정용은 전기요금이 하락하고 산업용 전기요금만 증가했다. 이는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에 비해 낮다는 사회적 비판을 수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 추세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주택용 전기는 2005년 110.82원/㎾h에서 2019년 104.95원/㎾h로 하락한 반면에, 산업용 전기요금은 2005년 60.25원/kWh에서 2019년 106.56원/㎾h으로 76% 상승해 오히려 가격이 역전됐다. 산업용 전기는 고전압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가정용에 비해 전압을 낮추기 위한 변전설비를 필요로 하지 않고 따라서 이만큼 원가가 덜 드는데도 판매가격은 오히려 높은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산업용 전기에서 한전이 더 많은 이윤을 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라는 것은 제품의 원가의 반영되는 수치다. 그래서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각국은 산업용 전기를 싸게 해 주고 가정용 전기를 비싸게 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나라의 산업용 전기와 가정용 전기가격을 비교한 결과를 보면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일본, 노르웨이,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영국, 미국 등 OECD 평균은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낮고, 산업용 전기요금과 가정용 전기요금이 유사한 수준인 것은 우리나라, 캐나다, 이태리 3개국뿐이다. 특히 탈원전을 하는 국가의 경우에도 산업용 전기보다 가정용 전기의 가격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hoto Image

둘째, 산업용 내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부담하는 전기요금 부담률 차이다. 한전이 2018년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전기요금에 비해 중소기업은 평균적으로 16%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고 하며, 지난 5년간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11조원의 전기요금을 더 부담했다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물론 대기업이 심야전력을 활용하고 ESS 등 제도를 통해 원가를 절감한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생산비용이 같고 ESS제도에 엄청난 보조금이 지급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이 과다한 지불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전환에 따른 비용부담을 가정용보다는 산업용이 많이 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에너지전환에 따른 전력요금 상승은 산업용에 부과하지 않고 가정용에 부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2020년 말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발전용 연료가 비싸지면 그만큼 전기요금을 올리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문제는 연료비연동제가 연료가격의 상승분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연료의 종류가 바뀜으로 연료비가 증가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즉 전력생산단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자력과 석탄이 생산단가가 2-3배 높은 LNG로 바뀌면 생산비용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를 그대로 연료비에 연동시킬 경우 결과적으로 산업용이 더 많은 부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중소기업계에서는 중소기업의 고용, 생산 등 사회적 순기능을 고려하고 특히 중소기업의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하여 전체적인 전력운영체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보다 값싼 전기를 공급해주도록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런 요구는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중소기업계에서 요구하는 제도개선사항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전력수요가 높지 않은 토요일 낮 시간대에 가중해 부과하던 중부하 요금을 경부하 요금으로 낮춰달라는 주장이다. 토요일 최대부하가 평일 중간부하보다 낮음에도 요금을 중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이 같은 제도는 지난 2015년 한시적으로 성공적으로 시행된 바 있어 제도운영에 큰 부담은 주지 않으면서 중소기업 경영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 전력 예비율이 상대적으로 충분한 6월과 11월에 대해서는 봄·가을철 요금과 동일하게 적용해달라는 것이다. 6월과 11월 최대전력 수요가 3월이나 10월과 비슷한 수준이고 예비전력이 충분하므로 굳이 중과하지 않고 최대 30% 이상 저렴한 봄·가을철 요금을 이 시기에도 적용하면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중소 제조기업에 한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의 부담을 일정기간 유예해달라는 주장이다. 이는 전력기반부담금이 지난 15년간 3.7%로 유지되는 동안에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78% 이상 급등한 점을 고려해 국제경기가 안정될 때까지 만이라도 증소기업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켜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제도개선에 앞서 전기요금 운영체계와 관련해 시스템적으로 보다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동안 전기요금과 관련해 중소기업계에서는 줄기차게 개선을 요구했지만 아주 미미한 정도밖에 반영되지 못했는데 그 근본 원인은 전력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기수요자인 기업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데서 기인한다. 특히 가정용 전력보다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이 훨씬(약 4배 정도) 더 많기 때문에 당연히 소비자로서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행 전기사업법(47조의2)에서는 전력수급 및 전력산업기반조성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산업통상자원부 내에 전력정책심의회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동 위원회의 위원자격은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국토교통부 등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고위공무원과 전력산업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또는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위촉하는 사람으로 돼 있다.

우선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인 고려를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위원에서 빠져 있다. 그리고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나 경제단체들은 쏙 빠지고 시민단체 관계자만 참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전기요금과 관련된 그동안의 정책이 소비자 부담은 줄이고 기업 부담은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특히 에너지전환정책을 수립하면서도 이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가정용이 아니라 산업계에 부담을 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관련 법령을 정비해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 입장을 정책과정에 반영시킬 수 있도록 기업 또는 경제단체의 참여가 보장돼야 하며, 중소기업정책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참여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전기요금제도 운용에 있어서 새 정부의 중소기업에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승원 전 중기중앙회 부회장(newssw1@naver.com)

<필자 소개>

서울대를 졸업하고 콜로라도대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행정고시 31회에 합격해 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30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을 역임하면서 중소기업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현재는 인수위 경제2분과 비상근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중소기업 현장의 어려움을 정책에 반영코자 매진하고 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