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위기 대비는 국산연구장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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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정책성과부장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 을'이라 불리는 기업이 있다. 네덜란드의 ASML이다.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 같은 반도체 대기업을 고객으로, 최첨단 반도체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만드는데 최고기술을 가진 회사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기술력을 가지면 갑보다 위에 있는 '슈퍼 을'이 되는 세상이다.

일부 분야에서의 우리나라 연구장비 개발 역량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이제는 모든 국민들이 익숙해진 코로나 검사를 위해 극소량의 유전자를 증폭하는 PCR은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용되온 기본적인 연구법이다. PCR 검사에 필요한 국산장비는 국내 1호 바이오벤처로 1992년 연구원 창업을 한 바이오니아에서 이미 개발했었기에 코로나 사태에 우리나라가 검사법 및 대응책을 가장 선제적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널리 수출하고 있어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진 우리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하지만 첨단연구장비의 경우는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2005년부터 13년 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을 통해 구축된 2조3000억원 규모의 실험용 연구장비 가운데 국산 연구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6.5%에 그치고 있고, 미국과 독일, 일본, 세 나라에서 수입한 제품이 70%에 달한다. 완성품으로는 어느 분야보다도 높은 비율이다. 과학기술 발전이 곧 국가경쟁력인 상황에서 필수 연구인프라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기존의 추격형 연구를 벗어나 선도형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관련 첨단 연구장비의 국산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한계 타파를 위해 과기정통부는 2017년부터 준비해 온 '연구장비산업 혁신성장전략'을 2020년 8월에 발표하며 연구장비 개발기술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연구장비 산업성장 생태계 조성 및 전략적 시장진출 지원체계를 마련했고, 이듬해 4월에 연구산업진흥법을 통과시키며 국내 연구산업활성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작년 3월 소재부품장비산업법을 제정헤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은 일찌감치 연구장비 국산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5년부터 국산연구장비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그 결실로 공초점열반사현미경, 보급형투과전자현미경, 이차이온질량분석기 등의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 기업에서 개발한 연구장비의 성능향상 및 개선을 위한 국산연구장비신뢰성향상사업도 수행했다. 한 예로 신개념의 3D 홀로토모그래피라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토모큐브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KAIST와의 산·학·연 협력을 통해 기술개발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2021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산연구장비의 이용자 확대와 성능향상을 통한 신뢰성 향상을 위해 국산연구장비활용센터를 대전 본원을 비롯하여 지역조직인 서울과 전주, 춘천센터에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연구산업진흥법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국산연구장비성능평가기관으로 선정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유경제 체제가 견고해지면서 글로벌 물류공급망은 분업화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불거진 비대칭적 물류공급망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처럼 국가전략산업의 자립화로 진행 중이다.

일본이 불러일으킨 소부장사태나 전세계를 패닉에 빠트린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보듯이 외국에서의 수입만을 믿고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또 다른 소부장, 또 다른 펜데믹에 직면했을 때 어떤 어려움에 빠지게 될지 알 수 없다.

우리의 운명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를 극복해가고 있는 과정속에서 보여준 우리의 기술력과 저력을 보면 기존 선진국을 능가하는 기술 자립의 그 날도 멀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강현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정책성과부장 hyunokang@kbs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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