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정의당의 비례대표 경선 결과가 발표됐다. 1번 류호정, 2번 장혜영, 11번 문정은, 12번 정민희. 네 후보는 모두 만 35세 이하 청년이다. 정의당의 '청년할당방침' 덕분이다. 청년 후보 득표 순서에 따라 1위부터 4위까지 1, 2, 11, 12번에 배치했다.
왜 청년이었을까. 왜 청년에게 기회를 줬을까. 나는 경선 출마선언문에 이렇게 썼다. “낡은 정치의 세대교체를 염원하는 국민의 명령이고, 고단한 청년 세대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며,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선배 세대의 헌신 위에 쌓아 올린 비장한 결의입니다.” 나는 그 기회를 가장 앞자리에서 부여받았다. 그렇게 국회에 왔고, 벌써 2년이 다 됐다. 많은 걸 배웠고, 많은 걸 이뤘다. 정의당의 1번 비례대표, 국회 최연소 의원, 여성 청년 노동자 출신 정치인. 해야 할 일도,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았다. 특히 '청년정치'가 참 어려웠다.
오직 청년 국회의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없다. 중년이든 장년이든 청년 세대를 위한 정치를 하면 그게 청년정치다. 수많은 정치인이 청년이 미래고, 청년이 희망이라고 한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놀랍겠지만 국회의원이 하는 말이 다 거짓은 아니다. 다만 청년이 국회의원이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중·장년의 국회의원은 하기 어려운 일이다. '분노'이고 '공감'이다. 기성세대가 만든 부당함에 대한 분노, 청년 세대가 겪는 좌절에 대한 공감이다.
청년정치를 주제로 수많이 인터뷰했다. 임기 내에 꼭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이 무엇인지 자주 묻는다. '채용비리 처벌에 관한 특별법' 처리는 단골 답변 중 하나다. 강원랜드, 우리은행, 신한은행. 민간기업과 공기업까지 가릴 것 없이 채용 비리가 터진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다. 뉴스를 보는 취업준비생은 좌절하고, 좌절을 반복하는 청년은 냉소한다. 젊은이들은 세상을 믿지 못하게 됐다.
수많은 정치인, 기업인, 학자, 고위 관료가 실력을 행사해서 채용 비리에 가담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 얼마 전 딸의 KT 특혜 채용에 관여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김 전 의원도 1심에서는 무죄였다. 딸의 특혜 채용은 있었지만 김 전 의원이 이익을 받은 게 아니라는 이유였다. 우리 형법은 특혜 채용 자체를 벌하지 않는다. 채용 업무를 방해한 것이 인정되면 '업무방해죄'가 될 뿐이다. 그게 인정되지 않으면 모두 풀려난다.
나는 채용비리처벌법 발의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사건을 언급했다. 우리은행 측에서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싶다고 했다. 보좌관을 통해 은행 입장을 들었다. '관례'라는 걸 그들도 인정했다. 높으신 분의 부탁, 요청, 협박을 받아서 자리 몇 개를 떼어 주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시정을 약속한 우리은행은 일부 그렇게 했다. 긍정적인 일이다. 채용비리 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다. 나쁜 놈 벌을 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채용 공정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그나저나 우리 아들놈이 이제 취직을 좀 해야 할텐데…” 하고 높으신 분이 말씀하시면 꼼짝없이 자리를 내주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다. 처벌 법규가 있어야 높으신 분도 무리하지 않고, 눈치 빠른 기업인도 “아시잖습니까. 괜히 잘못되면 의원님께 해가 될까 걱정입니다…” 하고 넌지시 거절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작년 1월 채용비리처벌특별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아직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 정의당의 힘이 약해서 그렇다. 그런데 그런 뻔한 것 말고 다른 이유도 분명 있다. 속절없이 시간이 지났더니 엉뚱한 것이 청년정치가 됐다. 이대남이 등장했고, 반페미가 청년담론을 참칭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성범죄) 무고죄 강화'가 청년 공약이란다. 대한민국 최초의 30대 야당 당대표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시대적 화두란다. 혼란한 대선판에 청년은 없다.
나도 방어하기 바쁘다. 페미니스트 국회의원, 여성 정치인이라 그렇다.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되기에 지긋지긋하고 귀찮은 그 싸움에 참전한다. 채용비리처벌법 대신 비동의강간죄를 강조하고, 먹고사니즘 대신 페미니즘을 설명하느라 바쁘다. 물론 이 전투에도 청년은 없다. 어쩌다 청년 정치인들이 젠더 전쟁을 하게 됐을까.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청년 정치인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이 법안을 얘기한다. 이런 건 좀 힘을 합쳐 보자고 한다. 본회의에 올릴 법안을 고르는 건 원내대표이거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거나 간사다. 여기에는 청년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쓴웃음이 피식 났다. 그럴 수 있을까?
내일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우리는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 새 대통령이 누군지 알게 된다. 두렵다. 나라 망할까 봐 두려운 건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될까 봐 두려운 것도 아니다. 청년을 성별로 갈라치는 그 나쁜 정치가 계속될까 봐 두렵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앞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 일을 좀 했으면 좋겠다. 최저 주거 기준을 올려서 감옥 같은 독방을 없애고, 보증금 없는 임대주택 공급하고, 저소득 청년에게 월세 지원하자. 구직 기회를 위해 채용 비리를 척결하고, 재직 시에 충분한 노동권을 보장받고, 부당하게 퇴직하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하자. 젠더 갈라치기 그만하고 이제 청년 문제를 풀었으면 좋겠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help@ryuhojeong.com
○류호정 의원은…
IT·게임 산업 노동자 출신으로, 제21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윤리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채용비리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현재는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선거 후보 선거대책본부 미디어홍보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