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노부인 한 분이 가구점으로 들어왔다. 난로를 하나 사고 싶다고 했다. 젊은 점원은 새로 나온 스토브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어떤 기능이 있는지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또 다른 것으로 넘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젊은이의 설명이 끝나자 노부인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이 스토브가 내 방을 따뜻하게 해 줄까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혹은 그 많은 해야 할 일 중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질문에 누구도 동의할 만한 답이 하나 있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오래된 금언이 말하지 않던가.
누군가는 당신에게 놀라운 제품이 있다면 그만큼 놀라운 경험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분명히 이 젊은 점원은 자신의 역할을 잘하기 원했고 분명히 열심히 일했다. 단지 '이 노부인에게 스토브가 왜 필요한 것일까'란 생각을 잠시 잊었던 탓이었다. 이 노부인의 바람은 어떤 멋진 신제품이 아니라 자신이 수십 년간 익숙한 방을 데워 줄 그런 난로였던 셈이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석학은 생각을 다루는 혁신에 대해 단서를 남긴 적이 있다. 그는 인식이 바뀌는 것이 다른 어떤 혁신만큼이나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로 돌아가 보자. 미국 자동차 시장은 얼어붙는다. 기업들이 앞다투어 가격 할인을 했지만 백약이 무효다. 한 자동차기업은 이런 광고를 띄운다. “직장을 잃으면 차를 되돌려 주세요.”
그 전에 비해 바뀐 것은 별반 없다. 제품도 바뀌지 않았고 그렇다고 경제공황의 징조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직장을 잃으면 계약을 해지해도 된다는 그것으로 판매는 한참 늘어난다. 거기다 이렇게 해지된 건은 계약 실적의 단지 일부뿐이었고, 그해 이 기업은 딜러가 4배나 많은 경쟁기업을 앞지른다.
가구점을 찾았다는 이 노부인 얘기는 앤드루 카네기의 모친이었다고 구전된다. 물론 다른 버전도 꽤 있다. 어느 버전에서는 카네기의 모친을 후대한 점원을 그의 공장에 꽤 후한 조건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미담에 가까운 다른 버전도 있다. 비 오는 어느 날 가구점 밖에서 비를 맞고 있는 어느 할머니를 가게 안으로 모신다. 이 할머니가 돌아가고 얼마 뒤 편지가 한 통 날아든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제 모친에게 베푼 친절을 들었습니다. 제 감사를 받아 주신다면 조그만 신축건물에 필요한 가구를 당신에게서 구입하고 싶습니다. - 앤드루 카네기.”
이 세 가지 상황들이 모두 다른 듯 다르지 않다. 이 노부인과 소비자들의 미래는 불안했고, 그 상대편을 신뢰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불안과 의심이 안심으로 바뀌었을 때 성공한 기업사례가 되었고, 또 따뜻한 미담이 되었다.
우리는 혁신을 무척이나 독특한 상황으로 전제한다. 하지만 혁신에는 그만큼 편만한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많은 이들은 혁신에 존재하는 이런 묘한 반전과 상치함의 매력에 푹 빠져 순례자가 되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뭘 찾으세요”란 물음조차 거기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기능이나 제품을 말하는 것일 수도, 고객의 불안과 바람에 연결되고자 하는 어느 순례자의 물음이 될 수도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