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럽연합(EU) 사이에 적정성 협의가 개시된 이후 4년 만인 지난해 12월 17일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제가 EU GDPR과 같은 수준임을 확인하는 적정성 결정이 채택됐다. 우리 기업이 EU 시민 개인정보를 별도 절차 없이 국내로 이전해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보완해 디지털 분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틀 전인 12월 15일 타결된 한국-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글로벌 데이터 경제시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는 적지 않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세계경제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한 전체 퍼즐의 한 조각을 맞췄을 뿐이다. 지능정보 사회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막대한 데이터가 처리될 수밖에 없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곳은 어디나 데이터가 수집되고 유통될 수밖에 없다. 네트워크로 데이터 흐름은 국경 가리지 않게 됐다. 세계 경제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경제로 체질이 전환되고 있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주요 기업도 디지털 기업으로 채워져 데이터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데이터 흐름을 어떻게 적절히 규율할 것인가가 국제 통상의 핵심 쟁점이 됐다. 최근까지 디지털 신안보 패러다임에서 첨단 산업 보호에 국가안보가 활용됐던 것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미래 통상 이슈로 새로운 '데이터 라운드(Data Round)' 시대가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정보보호나 데이터 프라이버시, 데이터 주권, 데이터 오너십 등 여러 법적 논리를 바탕으로 자국 데이터 통제권을 강화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경제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각국은 치열한 다툼을 벌일 것이다. 미래 경제에서 데이터는 필수가치 창출 자원이어서 데이터 흐름이 막히거나 데이터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면 경제 활동에서도 큰 제약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데이터경제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소위 '데이터 3법'을 개정했고, 국회에는 지능정보사회에 적합한 개인정보보호법 체계를 만들기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개정안에는 국제 데이터 흐름을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국외 이전에 관한 규정이 반영돼 있다.
데이터의 국제 흐름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우리 국민의 개인정보가 '안전하게' 해외로 흐르게 하고 국외 개인정보도 안전하게 국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아가 우리 법제 수준에 맞는 글로벌 데이터 유통 체계를 만드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과거에는 FTA 등으로 경제 영토를 넓혔다면 이제는 데이터 협정 등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 영토를 넓혀야 한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데이터 흐름을 잘 활용해 디지털 경제의 주축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신속하게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이유다.
통상을 전담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데이터 라운드에 대비해 데이터를 둘러싼 복잡하고 다각적인 이슈에 이해를 높여야 하고 데이터 규제를 담당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국내 개인정보 규제 역할에만 머무르지 말고 적극적으로 데이터 통상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개인정보가 안전하게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국민의 개인정보도 보호하고, 디지털 무역을 통한 국가 경제 발전에도 기여해야 한다. 데이터 통상의 시대이다. 새로운 데이터 라운드 중심에는 대한민국이 있어야 한다.
최경진(가천대 교수, 인공지능·빅데이터 정책연구센터장) kjchoi@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