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싸이월드는 메타버스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가 방문객을 대신 맞아주고 내가 직접 꾸민 가상의 방과 배경음악은 내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파도타기를 통해 나와 관련 있는 사람을 방문할 수도 있었다.
일련의 행위에는 일정한 금액을 지불해야 했는데, 도토리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상화폐가 사용됐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수많은 암호화폐가 개당 100원에 불과했던 도토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금액으로 유통되고 있다. 사용처가 분명했던 도토리보다 더 쓸모가 없을 수도 있는 데이터 덩어리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셈이다.
암호화폐는 정확한 쓰임새가 없이 거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모이지만 돈이 모이니까 사람이 몰리는, 일종의 돈놀이 현상일뿐 암호화폐 자체에 특별한 가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무가치함은 암호화폐의 근본 위험성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를 보완해준다며 등장한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이 바로 대체불가토큰(NFT)이다.
◇막연한 암호화폐에 특징을 담은 NFT
NFT는 Non-Fungible Token의 약자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이다. 기존 암호화폐는 우리가 사용하던 '법정화폐'를 본떠 만들어졌기에 지폐에 새겨져 있는 일련번호처럼 다른 디지털 정보가 기록돼 있지만 각각 가치는 같다. 비트코인 한 개 가치는 다음에 채굴된 비트코인과 같은 가치를 가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NFT는 각각 토큰에 '의미'를 부여해 서로 다른 가치를 갖는다. 예를 들어 같은 1만원 짜리 지폐라 하더라도 그 지폐에 '마이클 잭슨'의 친필 사인이 각인돼 있다면 그 1만원 짜리 지폐는 '팝의 황제'라는 의미가 부여되면서 다른 지폐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갖는다. NFT는 이처럼 토큰에 특정 디지털 자산 정보를 입력해 다른 토큰과 구별한다. 이를 '민팅(minting)'이라 하며 다른 암호화폐와 차별적으로 구분되는 특징이다.
NFT는 그동안 '거래'에만 의미가 부여돼 돈놀이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암호화폐에 실질적인 가치를 부여해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매긴다. 막연함에 특징이 부여되니 마치 실물처럼 느껴진다. NFT는 이러한 점이 크게 작용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NFT 시초는 일반적으로 2017년 캐나다 게임 개발 스타트업 대퍼랩스가 개발한 이더리움 기반 크립토키티로 알려져 있다. 크립토키티는 다양한 가상 고양이를 수집하고 이를 교배해 자신만의 희귀한 고양이를 만드는 게임이다. 해당 고양이는 고유한 일련번호가 부여됐다. 이용자들은 이 고양이를 암호화폐로 사고 팔았는데, 2017년 말 '드래곤'이라는 고양이가 11만달러(약 1억2000만원)에 팔리면서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다. 크립토키티는 암호화폐가 단순한 거래 대상을 넘어 디지털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NFT의 첫 성공사례가 됐다. 대퍼랩스는 이에 힘입어 미국 NBA와 손잡고 스타플레이어 동영상을 짧게 편집한 것을 NFT로 민팅해 거래하는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하는 등 NFT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NFT는 디지털 자산 소유 여부를 인증해주는 일종의 디지털 등기부등본 역할을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가장 크게 붐이 일어난 곳 중 하나가 바로 미술 시장이다.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웠던 미술 시장에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NFT가 등장함으로써 미술에 관심이 없던 사람마저 유인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미국 투자은행인 제프리스의 재무 분석가들은 NFT 시장 가치가 2025년에는 최소 800억달러(약 94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비 디지털 2차 미술 시장이 연간 약 100억달러 가치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해리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11%가 이미 NFT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이들은 이전에 한 번도 미술 작품을 구입한 경험도 없었지만 NFT에는 반응을 보였다는 말이다. 비 디지털 미술 작품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소유하기 어렵지만 NFT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주효했다.
◇NFT로 게임을 하면 밥이 나온다?
미술 시장뿐만 아니라 게임 시장 역시 NFT에 열광하고 있다. 게임을 하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온라인 게임은 돈을 지불해야만 남들보다 앞서게 되는 '페이투윈(Pay-to-win, P2W)' 구조를 가졌다. NFT 기반 게임들은 오히려 할수록 돈을 버는 '플레이투언(Play-to-Earn, P2E)'의 구조를 갖게 된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는 일부 아이템들을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NFT 게임 '엑시인피니티(엑시)'는 이미 동남아 국가에서 생계 수단 역할을 하고 있다. 회사 측이 밝힌 엑시의 일일 이용자수는 140만명으로 이들 각각의 월수익은 70만~100만원에 이른다. 한국 게임사 위메이드의 '미르4' 역시 저임금 국가(중남미, 동남아, 동유럽)에서 생계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르4에서 파밍할 수 있는 '흑철'이라는 게임 아이템은 암호화폐로 교환할 수 있으며 이 암호화폐는 거래소를 통해 현금화가 가능하다. 미르4에서 흑철을 24시간 동안 한달 내내 생산하면 약 40만~45만원 수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사들은 왜 NFT 게임을 만드는 것일까. 당연히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사는 NFT 게임 속에서 발생하는 인앱 결제, 코인 교환 수수료 등으로 기존 과금체계에 추가되는 신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엑시인피니티 관계자는 “캐릭터를 생성하고 거래하면서 드는 모든 가치의 95%는 이용자들에게 돌아가고, 게임 개발자들은 수수료 4.25%를 받는다”고 설명한다. 게임사는 NFT 아이템 거래를 위해 자체 코인을 발행하게 되는데 게임 이용자가 많아지고 인기를 끌수록 코인 가치가 높아지며 게임사가 얻는 수수료 등 이익도 늘어난다. 실제로 미르4에 적용된 암호화폐 '위믹스'는 지난 8월 개당 200원대에서 최근 2만원대로 100배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위험성을 고스란히 갖춘 NFT
NFT는 암호화폐가 갖는 불확실성과 무가치성을 보완한 토큰으로 간주된다. 때문에 최근 기업들은 부동산, 디지털 미디어, 트윗 등 존재하는 디지털 자산을 모두 NFT로 발행하려는 기세다.
그러나 NFT 역시 위험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우선 NFT가 해당 디지털 자산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NFT에는 대용량의 미디어 데이터를 넣을 수 없어 해당 디지털 자산의 URL이나 일련번호를 넣어 발행하게 된다. NFT를 발행하는 사람이 해당 디지털 자산을 서버에서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소유권도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발행한 디지털 자산 URL이 삭제되거나 유실되면 NFT는 빈 껍데기만 남아버리게 된다. NFT는 해당 디지털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수증 역할만 할 뿐 실제 권리는 NFT를 발행한 자가 구매자와 한 약속을 성실히 이행했을 때만 발생하게 된다. 현재까지 이런 소유권을 자동으로 인정해주거나 집행해주는 시스템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아 이들의 관계는 한낱 '구두계약'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무한정으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자산의 특징상 결국 이 '구두계약' 행위만이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정식계약이 아닌 구두계약을 효력이 있는 계약이라고 보기에는 양자 간 해석하는 내용도 다를 수 있는 만큼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것은 위험하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사는 게임이 흥할수록 발행하는 NFT로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게임이 인기가 떨어지거나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면 해당 NFT는 무용지물이 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게임 평균 수명은 3년, 모바일 게임은 6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게임에서 발행되는 NFT 아이템의 수명 역시 짧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같은 게임 개발사에서 다른 게임과 호환되게 할 수는 있겠지만 한 회사가 출시하는 모든 게임에 이용자가 재미를 느끼고 즐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게임 내 NFT 가치는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등락폭을 보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게임 속 가상재화를 현금화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NFT 게임이 활성화될 수 없다. 실제로 미르4는 현재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에서 출시돼 운영되고 있다.
저작권 위반에 대한 위험성도 크다. NFT는 미디어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얻는 것일 뿐 저작권에 대한 내용은 포함하지 않는다. 발행자가 저작권자이고 그에 따른 별도 계약을 진행하지 않는 한 NFT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소유권을 저작권이라고 오인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이에 대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국내 주식시장은 NFT 열풍에 휩싸였다. 어떤 기업이든 NFT가 연관됐다면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치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이 기술에 많은 돈이 몰리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메타버스 등 가상 공간에서 암호화폐나 NFT 같은 가상재화들이 신(新)경제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현재 이들은 재화나 가치의 정상적인 교환이 아닌 그저 투자와 거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이들이 미래 경제의 주체가 될 것인지 그저 거품인지는 아직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후자라면 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NFT 접근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호기자 dlghcap@nextdaily.co.kr